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116

멕시코: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너의 눈동자 너의 눈은 번개와 눈물의 조국, 말하는 침묵, 바람 없는 폭풍, 파도 없는 바다, 갇혀 있는 작은 새, 잠든 황금빛 맹수, 진실처럼 불경한 토파즈, (황옥(黃玉) 보석) 가을날 숲 속의 환한 빈터 거기 나무의 어깨 위에선 빛이 노래하고 모든 잎사귀는 새가 되는 곳, 아침이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눈으로 뒤덮인 해변, 불을 따 담은 과일 바구니, 감정을 고취시키는 거짓말, 이 세상의 거울 저 너머의 세상을 향한 문 정오에 바다의 고요한 맥동, 명멸하는 절대, 아득한 황무지. * * * * * * * * * * * * * * *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1914년 3월 31일 ~ 1998년 4월 19일)는 멕시코의 시인, 작가, 비평가 겸 외교관이다. ..

헝가리:미할리 초코나이 비테즈(Mihály Csokonai Vitéz)

잠자는 릴라에게 너희들 시원한 바람들아 불어오더라도, 살며시 오너라, 천천히 조용조용하게 흘러가거라, 작은 시내들아, 향기 나는 꽃들아 향기를 뿜어내거라. 쉿! 목동과 소녀들이여 여기 이 숲에서 쉬고 있다네 나의 릴라가 살포시 잠이 든 채로. * * * * * * * * * * * * * * * 미할리 초코나이 비테즈(Mihály Csokonai Vitéz, 1773년 11월 17일 데브레첸 ~ 1805년 1월 28일)는 헝가리의 서정시인으로, 헝가리 계몽주의 문학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다. 그가 태어난 데브레첸에서 교육을 받은 소코나이는 어린 나이에 그곳의 시 교수직에 임명되었다. 그 후 그는 행위의 부도덕성 때문에 그 직위를 박탈당했다. 남은 짧은 생의 12년은 거의 끊임없이 비참하게 지나갔고, 그는 ..

멕시코: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침묵 음악의 맨 밑바닥에서 올라오듯 하나의 음계가 올라와 떨면서 커지다가 다시 작아진다 또다시 음악이 오르면 그 음계는 입을 다물고 침묵의 심연에서 또 다른 침묵이 솟아오른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탑이거나 칼 같은 것이 솟아오르다가 커지다가 멈춘다 오르는 동안 또 떨어지는 것은 추억과 희망, 우리의 크고 작은 거짓 언어들 외치려 해도 목구멍에서 외침은 사라지고 수많은 침묵이 입 다문 그곳으로 또 다른 침묵이 되어 튀어나간다 * * * * * * * * * * * * * * *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1914년 3월 31일 ~ 1998년 4월 19일)는 멕시코의 시인, 작가, 비평가 겸 외교관이다. 멕시코시티 출신인 그는 진보적인 문화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문학에 ..

체코슬로바키아: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이젠 안녕 세상의 수많은 시에 나도 몇 줄 보탰지만 그것들이 귀뚜라미 소리보다 더 현명할 것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용서해 달라 이제 그만 작별을 고하리라 그것들은 달에 내디딘 첫 발자국도 아니었으며 어쩌다 잠깐 반짝거렸다 해도 그 자체의 빛이 아니라 반사한 것이었다 나는 다만 언어를 사랑했다 시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있어 왔다 사랑처럼 굶주림처럼, 전염병처럼, 전쟁처럼 때로는 나의 시가 당혹스러울 만큼 어리석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변명할 생각은 없다 아름다운 언어들을 찾는 것이 사람을 죽이고 살생하는 일보다 한결 나은 일이라고 믿으니까 * * * * * * * * * * * * * * *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년 9월 23일 프라하 ~ 1986년 1월 1..

멕시코: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태양의 돌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순간 하나만이 이 밤을 되찾고, 꿈 하나에 대항하며 모아 놓은 이미지들을 꿈꾸며, 꿈에 대항하며 모질게 조각된, 이 밤의 허무, 글자글자마다 일어선 맥박을 뽑아 버린 순간만이, 한편 바깥에선 시간이 풀려 내 영혼의 문들을 부순다 잔혹한 시간표를 지닌 세계, 다만 순간 하나 한편 도시들, 이름들, 맛들, 살아 있는 것이, 내 눈먼 이마에서 허물어진다, 한편 밤의 괴로움 내 사고는 고개를 수그리고 내 해골, 이제 내 피는 좀 더 천천히 걸어간다 이제 내 치아는 느슨해지고 내 눈은 흐려지고 하루들과 연도들 그 텅 빈 공포들이 쌓여간다, 한편 시간은 그의 부채를 접는다 이제 그 이미지들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순간이 가라앉아 떠돈다 죽음에 둘러싸여, 밤과 그 음산한 하품..

고대 그리스:소크라테스(Socrates)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 무절제와 질병이 만연하면 법정과 병원이 번창하게 될 걸세. 의사나 법률가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오겠지. 노예나 천민뿐만 아니라 교양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까지 의사나 법률가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은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네. 그러한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교육이 실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네. 더 불명예스러운 일도 있네. 성정이 고약해서 부정에 능한 자들 말이네. 그런 자들은 툭하면 법정에 의지해 죄를 면하려고 하지. 자신의 생활 태도를 반성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까만 궁리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악취미를 갖고 있지. 특별한 외상이나 유행병 때문이라면 모르지만 생활 습성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 역시도 명예스럽지 못..

세인트루시아:데릭 월컷(Derek Walcott)

사랑 이후의 사랑 그때가 올 것이다. 너의 집 문 앞에 너의 거울 속에 도착한 너 자신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가. 미소 지으며 서로를 맞이하게 될 때가. 그에게 말하라. 이곳에 앉으라고. 그리고 먹을 것을 차려 주라. 한때 너 자신이던 그 낯선 이를 너는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포도주를 주고, 빵을 주라. 너의 가슴을 그에게 돌려주라. 일생 동안 너를 사랑한 그 낯선 이에게. 다른 누군가를 찾느라 네가 외면했던 너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너를 아는 그에게. 책꽂이에 있는 사랑의 편지들을 치우라. 사진과 절망적인 글들도. 거울에 보이는 너의 이미지를 벗겨 내라. 앉으라. 그리고 너의 삶을 살라. * * * * * * * * * * * * * * * 데릭 월컷(Derek Walcott, 1930년 1월 2..

체코슬로바키아: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프라하의 봄 1 그들은 지구의 둥근 네 귀퉁이에 마주 보며 서 있다. 하늘나라 군대에서 쫓겨난 네 명의 마왕들. 지구의 네 귀퉁이에는 구름이 끼어있고 묵직한 자물쇠 네 개가 걸려있다. 해묵은 기념비의 그림자가 햇볕 쏟아지는 길 위에 누워 있다 징역의 시간에서 춤추는 시간으로, 장미의 시간에서 독사의 시간으로, 웃음의 시간에서 증오의 시간으로, 희망의 시간에서 절망의 시간으로, 그리고 그 절망의 시간에서 피가 맺는 죽음의 시간까지는 단 한 발자국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들의 목숨의 대행진. 수많은 세월들을 지나가면서 샌드페이퍼 위의 손가락처럼 우리가 울며 보낸 숱한 나날이 일 년 열두 달 계속되었다. 오늘도 나는 그 기념비 주위를 서성거린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며 묵시록의 멍에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소리에 귀를..

아프가니스탄:나디아 안주만(Nadia Anjuman)

혼란스러운 시는 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혼돈에 만족한다 ㅡ 스스로 길을 잃은 나는 고통과 기쁨에 만족한다 물을 마실 때 나는 고통과 기쁨에 만족한다 나는 대양에서 갈증을 느끼다가도, 물방울 하나에 만족하기도 한다 나는 삶의 무대로 나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내 번뜩이는 두뇌로, 때때로 바다에 만족한다 네 머리와 발을 꾸미지 마라, 차려입지 마라 유행은 쓸모없다 ㅡ 나는 이 혼돈에 만족한다 아치의 변조관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치 않다 내 예술의 정점을 들어라, 내가 뒤틀려 만족하는 동안 규칙을 부수어라, 내 혼돈에 빠지지 마라 내 뜨거운 슬픔을 느끼지 마라 ㅡ 나는 이 혼돈에 만족한다 * * * * * * * * * * * * * * * 나디아 안주만(Nadia Anjuman, 1980년 ~ 20..

아프가니스탄:나디아 안주만(Nadia Anjuman)

입을 열 생각이 없다 입을 열 생각이 없다 무엇을 노래한단 말인가? 삶이 미워하는 나 노래를 부르든 말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내가 고통스러울 때 왜 상냥함을 노래해야 한단 말인가? 아아! 압제자의 주먹에 내 입이 부숴진다 내 인생의 동반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내가 누구에게 상냥할 수 있을까? 말하는 것과 웃는 것 죽는 것과 사는 것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픔과 비통으로 인해 나의 부자연스러운 고독 나는 헛되이 태어났다 내 입은 봉해져야 한다 아! 나의 마음이여! 너는 지금 기념해야 할 봄이라는 것을 알지 않은가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붙잡힌 날개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오랫동안 침묵하였지만 한순간도 멜로디를 잊은 적이 없다 내가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장을 부수고 이 외로움으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