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안녕
세상의 수많은 시에 나도 몇 줄 보탰지만
그것들이 귀뚜라미 소리보다 더 현명할 것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용서해 달라
이제 그만 작별을 고하리라
그것들은 달에 내디딘 첫 발자국도 아니었으며
어쩌다 잠깐 반짝거렸다 해도
그 자체의 빛이 아니라 반사한 것이었다
나는 다만 언어를 사랑했다
시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있어 왔다
사랑처럼
굶주림처럼, 전염병처럼, 전쟁처럼
때로는 나의 시가 당혹스러울 만큼
어리석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변명할 생각은 없다
아름다운 언어들을 찾는 것이
사람을 죽이고 살생하는 일보다
한결 나은 일이라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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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년 9월 23일 프라하 ~ 1986년 1월 10일 프라하)는 체코 시인, 작가, 언론인이자 번역가이다.
개인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지향하는 포에티즘 운동을 이끈 인물의 한 명이기도 하다.
198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민족예술가(체코어:národní umělec) 칭호를 가지고 있다.
여러 김나지움에서 공부를 했지만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프라하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자신의 시를 팔아 맥주를 마셨다.
1921년 첫 시집이 출판되고 같은 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한다.
20세의 나이에 체코슬로바키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대표주자로 인정을 받는다.
1929년 3월 다른 6명의 공산주의 작가들과 함께 공산당에서 축출된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이끄는 볼셰비키화에 저항하는 서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1949년 사이페르트는 언론 활동을 그만두고 문학에만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의 시는 1936년, 1955년, 1968년에서 가장 뛰어난 시로 국가에서 주는 상을 받는다.
1967년에는 민족예술가 칭호를 받는다.
1968년 - 1970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작가 연맹 (체코어:Československý svaz spisovatelů)의 공식적인 대표직을 수행한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 시기에 뒤이어 normalizace 시기가 시작되고 사이페르트는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시기에는 줄곧 저항하는 입장에 섰으며 그의 작품들은 사미즈다트(samizdat, 구 소련 시절의 지하출판사를 일컫는 말)로 나오게 된다.
198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편집인으로 많은 신문과 잡지를 만들었다.
Rudé právo(붉은 권리), Rovnost(평등), Sršatec(횃불/선동자), Reflektor(전조등/반사경) 등은 공산당 출판부에서 나온 것들이다.
사이페르트는 인민의 집 (체코어:Lidový dům)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이페르트는 체코슬로바키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연합인 현대 문화 연맹 데베트실(Svaz moderní kultury Devětsil)의 창립과 활동에 참여했다.
1945년 이후에는 문학잡지 "Kytice" (꽃다발)을 냈고, 데베트실의 잡지인 "ReD"와 "Disk"를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