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ㅅ

사랑(5)

높은바위 2024. 6. 6. 07:08

 

소중히 여기어 정성을 다하는 마음. 정에 끌리어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러한 관계. 사랑에는 모성애, 형제애, 이성애, 종교애, 자기애, 운명애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시에 있어 사랑은 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바탕으로 지고한 사랑에 대한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동인이 된다.

한편 사랑은 그 좌절로 인한 외로움과 고통스러움, 물질성, 구속성 등의 내적 갈등을 야기하는 삶의 감옥 또는 업(業)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아침에 해 뜨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아무도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돈연, '백개의 이야기', "벽암록", P. 32)

 

수많은 사랑 버린 뒤 사랑은 온다

수많은 믿음 버린 뒤 믿음은 온다

다 보여주지 않으므로 보고 싶은 것 다 알지 못하므로 알고 싶은 것

(사랑의얼굴사랑의마음사랑의생각사랑의웃음사랑의울음사랑의믿음사랑의배반사랑의슬픔사랑의꿈사랑의냄새사랑의병사랑의죽음)

아무리 밀어내도 사랑은

돌아눕지 않는다 사랑은

병들어도 아름답고 사랑은

죽어도 무덤이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랑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우리는 모든 사랑의

고삐에 목을 맨다

한번 눈감은 사랑 다시 눈뜰 수 있을까

어디만큼 가야 창백한 눈물 보일까 사랑은

어디까지 가야 짓무른 외로움이 뚝뚝 빗방울로 떨어질까

 

꿈속까지 쳐들어 온

저 무서운 病(병). (천양희, '사랑의 폭력', "사람 그리운 도시", P. 27)

 

사랑이란

별 속의 눈물이 아니다

달빛에 축인

편지는 더욱 아니다

파괴된 태양의 조각들

그 조각이 소진되어

위대한 흙으로 무너져 내리고

그 흙에서

절망의 변증법으로 피어난 꽃 (김요섭, '사랑의 꽃', "63억광년을 산 이슬", P.74)

 

사랑을 하며 산다는 건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삶에의 의미를 지니리라 (서정윤, '의미', "홀로서기", P. 32)

 

사랑한다는 말은

기다린다는 말인 줄 알았다.

가장 절망적일 때 떠오른 얼굴

그 기다림으로 하여

살아갈 용기를 얻었었다. (서정윤, '사랑한다는 말은', "나를 찾아 떠난 길", p. 32)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김명수, '사랑', "바다의 눈", p. 102)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가을은 아무데나 함부로 갈꽃을 피웁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겨울은 언제든지 제 멋대로 갈꽃을 지웁니다

사람은 너무나 사랑했다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대로 사랑을 버립니다 (하종오, '사랑했기에', "情정", p. 38)

 

보고 만지는 것들마다 낡아지게 하고야 마는 눈의 나쁜 버릇이여 손 끝의 박덕함이여, 그침없이 가 닿는 내 눈길과 손끝에서 군말없이 낡아가고 있는 당신 (이선영, '사랑', "글자 속에 나를 구겨 넣는다", p. 60)

 

가을이 깊어져도 강물은 깊어지지 않는다

추억 더께 앉은 강뚝을 걸으며

입으로 노래를 불렀다

 

호주머니 속에 손수건을 접어넣듯

봄 여름 가을 색색의 시간들

조그맣게 접어넣듯

슬픔의 멍울들 잘디잘게 부수며

입으로 노래를 불렀다

 

부끄러움을 더 잘게 찢고

아픈 시간들 한 점 한 점

서녘 바람에 날리며

 

노래를 불러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가을 나무, 가을산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김유선, '가을사랑', "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 p.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