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나비와 광장 122. 나비와 광장 김 규 동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기계처럼 작열한 심장을 축일 한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3
121. 풀 121. 풀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3
120.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120.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 수 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3
119. 瀑 布 119. 瀑 布 김 수 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3
118. 눈 118. 눈 김 수 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3
117. 달 밤 117. 달 밤 이 호 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趙雄傳에 잠..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3
116. 강 있는 마을 116. 강 있는 마을 김 상 옥 한굽이 맑은 강은 들을 둘러 흘러가고 기나긴 여름날은 한결도 고요하다. 어디서 낮닭의 울음소리 귀살푸시 들리고 마을은 우뜸 아래뜸 그림같이 놓여있고 邑내로 가는 길은 꿈결처럼 내다뵈는데 길에는사람 한 사람 보이지도 않더라. 1947. 시집 ꡔ초적ꡕ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2
115. 새 1 115. 새 1 박 남 수 1 하늘에 깔아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 교태로 사랑을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2
114. 酒幕에서 114. 酒幕에서 김 용 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儀式 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2
113. 가을의 기도 113. 가을의 기도 김 현 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