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13. 가을의 기도

높은바위 2005. 7. 22. 06:09
 

113. 가을의 기도

 

                                           김 현 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시집 ‘김현승 시초’(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