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15. 새 1

높은바위 2005. 7. 22. 06:23

115. 새 1        

           

                 박  남  수

 

 

         1

  하늘에 깔아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1959. 신태양.

 

* 이 시는 새의 순수함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날카롭게 보임으로써 인간과 그 문명을 비판한 작품이다.

시 1에서 시적 자아는 새가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노래하고,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모른다’는 것은 일부러 의도하거나 꾸민 행동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나온 행동이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새들의 노래는 자연스럽고 그들의 사랑은 더욱 따뜻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생각은 2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새는 울어/뜻을 만들지 않는다’와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뜻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울고 싶으니 우는 것일 뿐 거기에 억지로 뜻(의미)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가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저절로 우러나와 이루어지는 것이지 억지로 꾸미어 나타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의 이면에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시적 자아는 새의 순수한 모습을 말하면서 간접적으로 인간과 그 문명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짓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조는 시 3의 ‘포수’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의 대조를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포수의 총탄이 닿기 전까지 새는 한없이 아름다운 ‘순수’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총탄에 맞았을 때, 거기에는 자연의 순수도 아름다움도 없다. 오직 ‘피에 젖은’ 한마리 새가 남을 뿐이다. 이 상한 새는 곧 사람의 손에 의해 파괴된 자연의 모습을 상징한다. 새가 기진 것이 ‘노래’와 ‘사랑’인데 비하여, 포수가 가진 것은 ‘한덩이 납’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대립적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