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18. 눈

높은바위 2005. 7. 23. 08:46
 

118.

 

                         김   수   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1957. 문학예술

 

* 이 시는 더러움과 허위로 가득찬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가 살아있는 눈처럼 순수하고 정의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갈망한 작품이다. 작품 전체가 두개의 문장, ‘눈은 살아 있다’와 ‘기침을 하자’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두 문장에 다른 성분이 덧붙으면서 의미가 뚜렷해지는 점층적 전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눈’과 ‘기침’ 속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눈’은 순수하고 생명력 있는 것을 의미하며, ‘기침’은 더럽고 어두운 것을 버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침을 하자’라는 구절은 버려야 할 그 무엇을 내뱉자는 뜻이 된다. ‘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는 말에서 이 점은 뚜렷이 드러난다. 이 ‘가래’는 시적 자아를 괴롭히는 더러운 것, 무가치한 것, 어두운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순수한 영혼과 육체를 좀먹는 것이다.

  이로 보아, 눈을 향하여 기침을 하는 행위는 일상적 생활의 굴레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진정한 영혼과 육체를 되찾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눈의 순수함, 차가움, 신선함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더러움과 속됨을 씻어낼 수 있는 순결성을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