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19. 瀑 布

높은바위 2005. 7. 23. 08:47
 

119. 瀑  布

 

                                           김 수 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1957. 현대문학

 

* 이 시는 사물에 대한 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지시로, ‘폭포’를 소재로 하여 부정적 현실에 대응하는 지성인의 행동 양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여느 서정시와 사뭇 다른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폭포라는 아름답고 놀라운 광경에 접해서도 주관적 영탄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물줄기의 낙하라는 무의미한 자연 현상에서 무엇인가 정신적 의미를 찾아내려 고심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사회 현실에 대응해서 사람들이 취해야 할 행동 양식 같은 것이다. 이 시에서 폭포는 시대적 상황, 사회적 현실에 외면한 채, 자신만의 무사 안일을 추구하는 소시민적 존재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예언자, 선각자의 모습으로 부각되고, 폭포의 세찬 물줄기와 웅장한 소리는 깨어 있는 자의 위대한 힘을 형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암담한 현실을 인식한 양심있는 자의 진실된 목소리를 갈구하는 시인의 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