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443

북한의 문화어 중간 요약정리

"북한의 언어"를 쭈욱 연재해 왔는데요. 오늘은 중간 복습 겸 요약정리를 다시 한번 하고 가겠습니다. 70여 년 동안 우리의 표준어와 달리 이른바 '문화어'를 사용하고 있는 북한은 말씀드렸다시피 '김일성의 어록과 평양말을 중심으로 함경도 방언을 다듬은 것'입니다. 그 특징은 이렇습니다. ① 한자어는 한글고유어로 대체하고 고유어가 없을 때는 그 뜻을 풀어쓰며 ② 외래어 역시 고유어로 대체하고 ③ 정치용어는 사상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한자어라 할지라도 수정을 금하며 ④ 과학기술용어 및 대중화된 한자어, 외래어는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자어의 경우 '견인선(牵引船)'은 '끌배', 외래어 '볼펜'은 '원주필', 일상용어 '도시락'은 '곽밥' 등으로 표현하는데요, 이는 우리 표준어..

건달(乾達)의 어원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건달입니더." 네, 아주 유명한 영화 '친구'의 장면 중 나오는 대사이죠. 이 '건달(乾達)'이라는 말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행패와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 '가진 밑천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통설에 따르면 '건달'이라는 이름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적 존재인 '간다르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요. '간다르바'는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사는 하늘나라의 신인데, 그는 고기나 밥은 먹지 않고 향(香)만 먹고살며,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를 하는 자유로운 신으로 인도판 요정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이 이름이 한국 등으로 넘어오면서 '일은 안 하고 빈둥댄다'라고 해서 부정적인 의..

북한의 언어에는 사이시옷이 없다

남한 언어나 북한 언어나 모두 그 뿌리가 같은 한민족의 말이어서 특별히 다를 것이 없지만, 70여 년 동안 단절돼 살아온 '언어 환경' 때문에 이질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질성이 더 강한 덕분에 앞으로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그 간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북한 언어에서는 '사이시옷'을 볼 수 없다는 특징이 있어서 알아봅니다. '사이시옷'하면 단어와 단어가 합성될 때, 또는 형태소가 합쳐질 때 쓰이는데, 북한에서는 이 '사이시옷'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나뭇가지'를 '나무가지'로 표기하고, '바닷가'를 '바다가'로 적습니다. 하지만 읽을 때는 '사이시옷'이 있는 것처럼 '나뭇가지', '바닷가'로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무가지'라고 썼다고 해서 '나무가지'로 읽거나 말하지 않고, ..

기특하다(奇特하다)

"엄마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이가 기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딴은 그럴듯한 얘기였으나 이미 노중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묘옥인지라 웃음으로 넘기면서 아이의 어른스러운 염려를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황석영, 장길산, 창작과 비평사, 1995년] '기특하다'라는 말은 '주로 어린아이를 칭찬할 때 쓰는 말'로,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신통하여 귀염성이 있을 때'를 일컫는 말이죠. '기특하다'는 한자 '기특(奇特)+하다'의 합성어로 '기특하니, 기특하여, 기특해' 등의 형용사로 활용합니다. 원래 '행동이 특별해 귀염성이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나, 그 본래의 뜻은 '매우 특이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한자 '奇特'의 '奇'는 '괴상함·진귀함·뛰어남'의 뜻이고, '特'은 소의 수컷으로 '오직 하..

북한의 언어 : 발음[곡쫑옵따(?)]

북한말의 발음과 남한의 발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ㅓ'와 'ㅗ'입니다. '걱정없다'를 북한에서는 '곡쫑옵따'로 말합니다. 이것은 모음 'ㅓ'를 북한에서는 'ㅗ'에 가깝게 발음하는 습관 때문에 그렇습니다. 입술을 평평하게 하여 말하는 남한 사람들과는 달리 북한 사람들은 입술을 동그랗게 하여 발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원순모음화'라고 하는데, 북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고저 고저'하는 말도 이 발음 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저'는 '그저'나 '거저'가 원순모음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ㅣ'모음 역행 동화를 인정하는 것을 보더라도 남한 발음과 차이를 보입니다. 그 예로, '지팡이'를 '지팽이'로 한다든지 '건더기'를 '건데기'로 말하고, 심지어는 '부수다'를 '부시..

그와 그녀

'그와 그녀... '는 '3인칭 대명사로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거나 듣는 이나 말하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죠. 우리말에서 '그'와 '그녀'는 신문학 초창기인 1920년대 김동인과 이광수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김동인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서양문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일본 문인들이 영어의 'he'와 'she'를 각각 '그 남자'라는 의미의 '가레(彼)'와 '가노조(彼女)'란 단어로 번역한 걸 보고 이를 우리 문학에 그대로 옮겨 '피(彼)', 'she'는 '피녀(彼女)'라는 말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곧 '그'와 '그녀'의 시작인 셈입니다. 그전까지는 '그' 대신에 '궐자(厥者)', '그녀' 대신에 '궐녀(厥女)'라는 말을 썼는데, 이광수와 김동인 등이 '그'와 '..

북한의 언어 : '남색짜리'

얼마 전에 SBS 금토 드라마 "천 원짜리 변호사"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다는 연예기사를 보았는데요. 뒤 얘기에 제작사와 작가의 불화로 주 1회만 방영되다 보니 '천 원짜리 변호사가 아닌 오백 원 짜리 변호사'라는 굴욕적인 소리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도 '짜리'라고 하면 '어떤 값이나 혹은 그 수량으로 된 물건'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천 원짜리', '두 개짜리', '오 년짜리' 등입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짜리'란 말을 더 다양한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짜리'가 붙여지는 말은 그 격이 주로 낮춰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대표적으로 어린이의 나이를 말할 때 '몇 살짜리 아이'라고 하는 것을 비롯하여 우리가 입는 옷과 관련된 말에 붙어 그 옷을 입은 사람을 홀대해서..

'을씨년스럽다'의 유래

휘날리는 만국기와 열띤 함성이 사라진 운동회가 끝난 저녁의 운동장, 한여름의 축제가 끝난 쓸쓸한 바닷가... 이런 '스산하고 쓸쓸한 상황이나, 혹은 날씨나, 마음이 쓸쓸하고 흐린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우리는 '을씨년스럽다'란 표현을 합니다. 여기에 쓰인 '을씨년'은 1905년 을사년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라는 데서 나온 말이지요. 을사년에 정부가 일본과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그 을사조약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내정간섭까지 가능하도록 만든 조약이었습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고, 이 때문에 국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나라를 잃은 허탈한 슬픔에 잠겨있는 국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을사년의 분위기와 비교하여 '을사년스럽다..

북한의 언어 : 음식 용어

아기들이 먹는 분유를 북한에서는 '가루우유'라고 합니다. 또 설탕은 '사탕가루'라고 하고요. 조미료는 '맛내기'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식용유를 북한에서는 '먹는 기름'이라고 하고요, 엿기름은 '보리길금'으로 통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남한과 북한이 모두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조금씩 의미가 다르거나 겸용으로 부르는 음식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으로 '냉면'과 '국수'가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냉면'과 '국수'를 구분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선 '냉면'과 '국수'를 구분하지 않고 다 같이 '국수'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그 유명한 평양냉면, 함흥냉면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묻는 분도 계실 텐데요. 평양냉면, 함흥냉면은 표준용어로 있을 뿐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라고 합..

벽창호

앞서 '옹고집'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집이 센 사람,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을 무엇이라 하는가요? 보통 '고집쟁이, 고집통, 고집통이'라 하고, 고집을 피우는 정도가 심하면 '옹고집쟁이, 황고집쟁이'라 하지요. 고집이 센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는 이 단어들 말고도 '벽창호'가 있습니다. '벽창호'는 고집이 센 사람뿐만 아니라 우둔한 사람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완고해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현재 '벽창호'는 주로 말이 도통 통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을 지시하지만, "너 참 벽창호구나. 이제 고집 좀 꺾어라"는 문장에서 보듯 '고집이 센 사람'을 일차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20세기 초 문헌에서야 발견되는데요. 사전으로는 '큰사전'(1950)에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