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710

세인트루시아:데릭 월컷(Derek Walcott)

사랑 이후의 사랑 그때가 올 것이다. 너의 집 문 앞에 너의 거울 속에 도착한 너 자신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가. 미소 지으며 서로를 맞이하게 될 때가. 그에게 말하라. 이곳에 앉으라고. 그리고 먹을 것을 차려 주라. 한때 너 자신이던 그 낯선 이를 너는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포도주를 주고, 빵을 주라. 너의 가슴을 그에게 돌려주라. 일생 동안 너를 사랑한 그 낯선 이에게. 다른 누군가를 찾느라 네가 외면했던 너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너를 아는 그에게. 책꽂이에 있는 사랑의 편지들을 치우라. 사진과 절망적인 글들도. 거울에 보이는 너의 이미지를 벗겨 내라. 앉으라. 그리고 너의 삶을 살라. * * * * * * * * * * * * * * * 데릭 월컷(Derek Walcott, 1930년 1월 2..

체코슬로바키아: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프라하의 봄 1 그들은 지구의 둥근 네 귀퉁이에 마주 보며 서 있다. 하늘나라 군대에서 쫓겨난 네 명의 마왕들. 지구의 네 귀퉁이에는 구름이 끼어있고 묵직한 자물쇠 네 개가 걸려있다. 해묵은 기념비의 그림자가 햇볕 쏟아지는 길 위에 누워 있다 징역의 시간에서 춤추는 시간으로, 장미의 시간에서 독사의 시간으로, 웃음의 시간에서 증오의 시간으로, 희망의 시간에서 절망의 시간으로, 그리고 그 절망의 시간에서 피가 맺는 죽음의 시간까지는 단 한 발자국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들의 목숨의 대행진. 수많은 세월들을 지나가면서 샌드페이퍼 위의 손가락처럼 우리가 울며 보낸 숱한 나날이 일 년 열두 달 계속되었다. 오늘도 나는 그 기념비 주위를 서성거린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며 묵시록의 멍에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소리에 귀를..

존 애쉬베리(John Ashberry)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너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낮과 밤을 여행해 눈보라와 사막의 열기를 뚫고 급류를 건너고 좁은 길들을 지나. 하지만 그는 알까, 어디서 너를 찾을지. 그가 너를 알아볼까, 너를 보았을 때. 너에게 건네줄까, 너를 위해 그가 갖고 있는 것을. * * * * * * * * * * * * * * * 존 로렌스 애쉬베리(John Lawrence Ashberry, 1927년 7월 28일 ~ 2017년 9월 3일)는 미국의 시인이자 미술 비평가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시에는 샌프란시스코 중심의 ‘비트 시’(Beat Poetry), 보스턴 중심의 이른바 ‘고백 시’(Confessional Poetry), 노스캐롤라이나 중심의 ‘블랙마운틴 시..

조수에 알레산드로 주세페 카르두치(Giosuè Alessandro Giuseppe Carducci)

추억의 눈물 짙은 등황색 꽃을 피울 그대의 가냘픈 순이 부러져 버린 석류나무는 외로운 앞마당에 고요히 내린 유월의 따스한 햇살로 이제 온통 푸른 기운을 되찾았네 그대는 내 줄기 위에서 쓸모없는 삶으로 흔들리어 메마른 외톨이꽃이라오 차고 검은 흙속에 묻힌 그대에게 태양조차 일깨우지 못하네 기쁨을 줄 사랑을 * * * * * * * * * * * * * * * 조수에 알레산드로 주세페 카르두치(Giosuè Alessandro Giuseppe Carducci, 1835년 7월 27일 ~ 1907년 2월 16일)는 이탈리아의 시인·고전문학자이다. 중부 이탈리아의 발디카스텔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리스·라틴을 위시한 고전작품을 가까이하였고, 근대의 작가로서는 알레산드로 만초니와 조반니 베르셰의 작품을 애독하였..

조수에 알레산드로 주세페 카르두치(Giosuè Alessandro Giuseppe Carducci)

사탄찬가 사탄은 불전차를 타고 자유자재로 여기저기를 오가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네. 아, 사탄아 이 반역자여, 아, 이지자여 이것이 복수의 힘 내 당신께 경의를 보내네. 우리는 당신께 기도를 올리며 신성한 영광을 비네. 당신은 여호와를 정복하고 전도사를 뒤로 떼어버렸네. * * * * * * * * * * * * * * 1861년 교황령의 로마와 오스트리아 및 프랑스의 지배 하에 있던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부분적 통일을 이뤘던 이탈리아 왕국을 찬양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사탄'이란 종교적 관점에서 '악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정치 조직을 뜻한다. 당시 교황령이었던 '로마'로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려 했던 '가리발디' 장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다. '사탄찬가'는 카르두치의 작품..

아프가니스탄:나디아 안주만(Nadia Anjuman)

혼란스러운 시는 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혼돈에 만족한다 ㅡ 스스로 길을 잃은 나는 고통과 기쁨에 만족한다 물을 마실 때 나는 고통과 기쁨에 만족한다 나는 대양에서 갈증을 느끼다가도, 물방울 하나에 만족하기도 한다 나는 삶의 무대로 나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내 번뜩이는 두뇌로, 때때로 바다에 만족한다 네 머리와 발을 꾸미지 마라, 차려입지 마라 유행은 쓸모없다 ㅡ 나는 이 혼돈에 만족한다 아치의 변조관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치 않다 내 예술의 정점을 들어라, 내가 뒤틀려 만족하는 동안 규칙을 부수어라, 내 혼돈에 빠지지 마라 내 뜨거운 슬픔을 느끼지 마라 ㅡ 나는 이 혼돈에 만족한다 * * * * * * * * * * * * * * * 나디아 안주만(Nadia Anjuman, 1980년 ~ 20..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언덕 위의 오후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백 송이 꽃을 만질래요 그리고 한 송이도 꺾지 않아요. 눈으로 조용히 벼랑과 구름을 바라보고, 바람결에 풀이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걸 보겠어요. 저 건너 마을에 불빛 보이기 시작하면 내 불빛 마음에 새겨 찾아 내려올 거예요! * * * * * * * * * * * * * * *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1892년 2월 22일 ~ 1950년 10월 19일)는 미국의 여성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시집 '하프 잣는 여인'으로 192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메인주의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난하게 생활하다가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보헤..

아프가니스탄:나디아 안주만(Nadia Anjuman)

입을 열 생각이 없다 입을 열 생각이 없다 무엇을 노래한단 말인가? 삶이 미워하는 나 노래를 부르든 말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내가 고통스러울 때 왜 상냥함을 노래해야 한단 말인가? 아아! 압제자의 주먹에 내 입이 부숴진다 내 인생의 동반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내가 누구에게 상냥할 수 있을까? 말하는 것과 웃는 것 죽는 것과 사는 것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픔과 비통으로 인해 나의 부자연스러운 고독 나는 헛되이 태어났다 내 입은 봉해져야 한다 아! 나의 마음이여! 너는 지금 기념해야 할 봄이라는 것을 알지 않은가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붙잡힌 날개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오랫동안 침묵하였지만 한순간도 멜로디를 잊은 적이 없다 내가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장을 부수고 이 외로움으로부..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가여워 마세요 날 가여워 마세요, 달이 이지러진다고, 썰물이 바다로 밀려간다고, 한 남자의 사랑이 그토록 쉬 사그라든다고, 나는 알지요. 사랑이란 바람 한 번 불면 떨어지고 마는 활짝 핀 꽃일 뿐임을. 계산 빠른 머리는 언제나 뻔히 아는 것을 가슴은 늦게야 배운다는 것, 그것만 가여워하세요. * * * * * * * * * * * * * * *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1892년 2월 22일 ~ 1950년 10월 19일)는 미국의 여성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92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여성으로서는 세 번째의 수상이고 그녀가 31세 때였다. 앞의 두 상 - 1918년 세라 티즈데일, 1919년 마거릿 위드머 - 은 1922년 퓰리처상이 공식으로 시작하기..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내 입술이 어느 입술을 키스했는지, 어디서, 왜 내 입술이 어느 입술을 키스했는지, 어디서, 왜 했는지 난 잊었어, 어느 팔이 내 머리를 아침까지 받쳐주었는지도 몰라. 오늘 밤 비는 창문을 두드리고 한숨지으며, 내 대답을 들으려는 유령을 가득 품고 왔네. 내 가슴에는 조용한 아픔이 솟아오르네, 이제 다시는, 한밤중에 울면서 날 찾을 리 없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젊은이들 때문에. 그리하여 겨울에 한 외로운 나무가 서 있네, 어떤 새들이 하나씩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나, 나뭇가지들이 전보다 잠잠해졌음을 아는. 어떤 연인들이 오고 갔는지 난 알 수 없네, 단지 내 안에서 한동안 노래했던 여름이 더 이상 내 안에서 노래하지 않음을 알 뿐이네. * * * * * * * * * * * * * * * * 에드나 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