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710

주희(朱熹)

책을 읽으니 감회가 있어(觀書有感관서유감) 半畝方塘一鑑開(반무방당일감개) 조그만 네모 연못이 거울처럼 열리니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에 떠 있네.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무엇일까? 이 연못이 이리 맑은 까닭은? 爲有源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샘이 있어 맑은 물이 흘러오기 때문이지. 昨夜江邊春水生(작야강변춘수생) 지난밤 강가에 봄물이 불어나니 蒙衝巨艦一毛輕(몽충거함일모경) 거대한 전함이 터럭처럼 떠올랐네. 向來枉費推移力(향래왕비추이력) 이전엔 힘을 들여 옮기려고 애썼는데 此日中流自在行(차일중류자재행) 오늘은 강 가운데 저절로 떠 다니네. * * * * * * * * * * * * * * * * * 주희(朱熹, 1130년 10월 18일 ~ 1200년 4월 23일)는..

니키 지오바니(Nikki Giovanni)

납치의 시 시인에 의해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나는 당신을 납치할 거야 나의 시구와 운율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롱아일랜드의 존스 해변이나 혹은 어쩌면 코니아일랜드로 혹은 어쩌면 곧바로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야 라일락 속에서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에게 흠뻑 비를 맞히고 내 시야를 보완하기 위해 해변과 뒤섞고 당신을 위해 현악기를 연주하고 내 사랑 노래를 바치고 당신을 얻기 위해선 어떤 것도 할 거야 당신을 붉은색 검은색 초록색으로 두르고 엄마에게 당신을 보여 줄 거야 그래,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나는 납치할 거야 당신을 "그래, 나는 당신을 또다시 시로 납치할 거야. 시의 운율과 시어들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라일락으로 당신 삶의 운을 맞추고 당신을 비 내리는 시의 해변에 서 있게 할 거야...

니키 지오바니(Nikki Giovanni)

선택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 둘이 같지는 않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원하는 일 그리고 아직 원할 것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일 내가 가야만 하는 곳에 갈 수 없을 때 비록 나란히 가거나 옆으로 간다 할지라도 그저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갈 뿐 내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느끼려고 나는 노력한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인간만이 수많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우는 법을 배우는가의 이유이다. * * * * * * * * * * * * * * * * 니키 지오바..

루쉰(鲁迅, 魯迅, Lǔ Xùn)

그림자의 고별 사람이 잠에 빠져 시간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림자가 작별인사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국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아이들 미래의 황금세계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따라가기 싫다. 머무르고 싶지도 않다. 싫다. 아아, 아아, 싫다. 허공을 헤매는 편이 차라리 낫다. 나는 한갓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와 헤어져 어둠 속에 가라앉을까 한다. 그러면 어둠은 나를 삼켜 버릴 것이다. 그러면 밝음도 나를 지워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명암 사이를 헤매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어둠 속에 빠지는 편이 낫다. 그러나 나는 결국 명암 사이를..

네덜란드: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테오에게 나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사람들 눈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지 늘 그러했고 앞으로도 사회적 지위를 결코 가질 수 없는 간단히 말해 바닥 중의 바닥인 별 볼 일 없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 그러나 이 모든 게 틀림없는 진실이라 해도 언젠가는 나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구나 이 보잘것없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마음속에 품은 것들을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별것 아닐지도 몰라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별을 바라볼 때마다 늘 꿈꾸게 되지 왜 우리는 하늘의 불꽃 가까이 다가설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것일까 늙어서 편히 죽는다면 저기로 걸어갔을 거라며 스스로에게 말하곤 하지 늦었으니 이만 누워야겠어 잘 자렴 행운을 빌게 악수를 건네며 사랑하는 빈센트가 * * * * * * * * * * * * * ..

루쉰(鲁迅, 魯迅, Lǔ Xùn)

죽은 뒤(死後) * * * * * * * * * * * * * * * * 루쉰(鲁迅, 魯迅, Lǔ Xùn, 1881년 9월 25일 사오싱시 ~ 1936년 10월 19일 상하이시)은 중국의 소설가, 시인이다. 루쉰(魯迅)은 청 말기인 1881년 저장성 사오싱 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저우펑이는 일찍이 수재에 급제까지 한 선비였고, 조부인 저우푸칭은 한림원에서 책을 편집하고 바로잡는 벼슬을 지내는 등 집안이 꽤 번성했다. 그러나 13세 되던 해 조부가 모종의 사건으로 하옥되고 부친마저 누우면서 집안은 일시에 몰락했다. 22세 때 해외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 공부의 길로 들어섰지만, 의술로 질병을 고치는 것보다는 정신을 개조하는 것이 더 시급함을 절감하고는 문학으로 전향했다. 그의 문학은 3..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나는 내가 아니다​ ​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자 이따금 내가 만나지만 대부분을 잊고 지내는 자, 내가 말할 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자, 내가 미워할 때 容恕(용서)하는 자, 가끔은 내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가는 자,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에 서 있는 자, 그자가 바로 나이다. * * * * * * * * * * * * * * * I am not I I am I, I am this one Walking beside me whom I do not see, whom at times I manage to visit, and whom at other times I forget; who remains calm and silent while I talk, and forgives, gentl..

루쉰(鲁迅, 魯迅, Lǔ Xùn)

사랑의 신 공중에 날개 편 꼬마천사 한 손에 화살 들고 시위를 당긴다 웬일일까 알지 못해도 한방의 화살이 가슴에 박힌다 "꼬마천사님 고마워요. 제게 사랑의 씨앗을 심어 주셔서! 하지만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전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 거죠?" 천사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당황해서 말한다. "아! 당신도 마음이 있잖아요. 결국 그런 말씀을 하다니요. 그대가 누굴 사랑해야 하는지 제가 어찌 알겠어요. 제 화살은 멋대로랍니다! 그대가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면 생명을 바쳐 그이를 사랑하세요. 만일 그대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생명을 버릴 수도 있겠지요." * * * * * * * * * * * * * * * * 루쉰(鲁迅, 魯迅, Lǔ Xùn, 1881년 9월 25일 사오싱시 ~ 1936년 10월 19일 ..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소녀의 죽음 ​ 분노와 질투에 눈이 멀어서 그는 순진한 그 소녀를 죽였어요. 미소 지으며, 미소 지으며 그 소녀를 죽였어요. 눈같이 하얀 작은 상자에 넣어 사람들을 그녀를 무덤가로 데려갔어요. 가슴의 상처에서는 가느다란 핏줄이 솟아 나오고, 티 없는 그녀의 얼굴은 첫 키스의 여운을 간직한 채, 눈은 울고 있었고, 반쯤 벌린 입술은 하늘의 눈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얀 밀감 꽃들 사이로, 상자의 흔들거림에 따라, 미소 지으며, 미소 지으며 그 소녀는 떠나갔어요. * * * * * * * * * * * * * * * *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1881년 ~ 1958년)는 에스파냐의 시인이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는 1881년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의 항구도시..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묶인 개 내게 있어서 가을의 시작이라는 것은, 프라테로. 석양과 함께, 스산함과 함께 가련해지는 뒷마당 혹은 앞마당 정원수 수풀의 인기척 없는 곳에서, 한마음으로 오랫동안 짖어대고 있는 한 마리의 묶인 개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노랗게 물들어가는 이 무렵은, 어디에 가도 지는 해를 향해서 짖어대는 그 묶인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프라테로…… 그 짖는 소리는, 내게는 아무래도 슬픔의 노래로 들리는구나. 그것은 흡사 욕심스러운 마음이 사라져 가는 보물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잡으려고 하는 듯이 생명이라는 생명이 사라져 가는 황금의 계절에 바싹 뒤따르려고 하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스러운 마음이 끌어모아져 이르는 곳에 숨겨진 황금은 환상과 같은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거울 조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