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440

캐비닛엔 '파일'을 넣고 '화일'은 넣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외래어 중에 '외래어 표기법 규정'과 다르게 잘못 쓰고 있는 외래어 몇 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보는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시킨다. / 정보는 컴퓨터에 화일로 저장시킨다.' '파일'과 '화일' 중 어떤 발음이 맞을까요? 영어의 첫소리 [f]는 [ㅍ]으로 적는다고 돼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f]는 우리말 소리로 정확하게 대응되는 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의 file을 우리말 [ㅍ]가 가까운 것으로 간주해서 모두 [ㅍ]으로 적기로 규정했습니다. 따라서 '화일'이 아니라 '파일'이 맞고요, '화운데이션'이 아니라 '파운데이션'으로 발음해야 합니다. 또 '계란 후라이'가 아니라 '계란 프라이'가 올바른 표현이 되는 겁니다. 외래어 표기상으로 [ㅍ]이 맞지만..

일본식 한자어인 '낭만'을 '로망'으로 쓰면 어떨까요?

"금강산은 4계절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죠.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겨울은 개골산, 같은 산이지만 계절마다 다른 이름이 있으니 멋과 낭만이 느껴지네요." "난 낭만적인 남자가 좋더라." "넌 어쩌면 그렇게 낭만이 없니?" 이렇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고 있는 말 중의 하나가 '낭만'이라는 단어죠. 그런데 '낭만'이라는 말이 일본식 한자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이렇게 잘 쓰고 있는 '낭만'이란 말의 탄생은 그 뜻만큼 낭만적이진 않습니다. 이 말은 '대중적인 설화'라는 뜻의 프랑스어 '로망'에서 나온 말인데요. 그것이 '소설'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했고 17세기경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지금의 공상적이며 감성적이란 뜻을 가진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로망..

'들르다'의 올바른 활용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그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란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엄마, 나 학원 갔다가 친구네 집에 들려서 놀다 올게." "얘야, 시장 가는 길에 은행 좀 들렸다가 올래?" "요즘 왜 통 들리질 않니? 한번 들려라. 얼굴 좀 보자." 지나는 길에 잠깐 거쳐간다는 의미를 가진 말, 이 단어를 많은 분들이 이렇게들 사용하시죠? , 하지만 를 이렇게 활용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란 활용은 '소리가 들리다' 할 때의 '들리다'를 활용한 것입니다. '지나는 길에 잠시 거쳐간다'는 뜻의 '들르다'의 올바른 활용은 '들러서', '들르지', '들르고', '들렀다'입니다. 그러니까 "친구네 집에 들렸다 올게요."가 아니라 "들렀다 올게요." "은행에 들..

될수록 / 되도록

언제 여름휴가를 가느냐고 물었을 때 '될수록 빨리 가려고 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될수록'이란 표현, 잠깐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될 수 있으면'이란 뜻으로 말할 때 '될수록'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죠? '될수록 빨리 들어오겠다' 등. 그런데 '될수록'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닙니다. '될 수 있으면' 또는 '될 수 있는 대로'의 뜻으로 쓸 때는 '되도록'으로 써야 합니다. '될수록'이란 말에서 쓰인 '-(으)ㄹ수록'이란 것은 어떤 일이 더하여 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는 말은, 친구는 하나보다는 둘 있는 게 더 좋고, 둘 있는 것보다는 셋 있는 것이 더 좋다는 식으로 말할 때 '많을수록'이란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될수록..

'와꾸' → 창틀

일본말은 건축현장에서 뿐 아니라 미용실, 음식점, 교통용어 등 우리 생활 전반에 숨어 들어와 있는데, 그중에서 '문틀, 창틀'을 뜻하는 '마도 와꾸'와 음식점에서 많이 쓰고 있는 '다대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마도 와꾸'라는 말은 '창'을 뜻하는 '마도'와 '틀'을 뜻하는 '와꾸'가 합쳐진 합성어인데, 본래는 '창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건축 공사장에 들어와 쓰이기 시작하면서 '창틀'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문틀'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특히 '와꾸'는 "이 상자는 와꾸가 맞지 않네."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요. '틀'이란 우리말을 써야겠죠. 현재 공사장에서 쓰고 있는 일본말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건축기술을 배운 기술자들이 그 당시 쓰던 말들을 그대로 갖다 ..

좋은 우리말 찾기

한 해도 이제 11월과 12월 두 달 정도 남았지요. 우리말에서 고 하면 그저 세월을 무심히 흘러가게 한다는 뜻만 드러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지나간 한 해를 점검하고 반성하거나 새해의 포부를 다져보는 적극적인 의미가 별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 를 이라고 표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란 말의 느낌이 어떻습니까? 대개 집에 온 손님이 떠날 때, 그냥 혼자 가게 내보내지는 않죠. 손님을 배웅해서 대문 밖이나 골목 밖까지 동행하며 다하지 못한 얘기도 나누면서 헤어집니다. 그래서, 이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이 시기를 이라고 말해 보는 것도 괜찮겠죠? 다시 말씀드리면, 은 는 뜻이 됩니다. 오늘 우리말 바른 글에서는 가는 세월을 좀 더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는 뜻을 가진 말, 을 많이 씁시다.

'선택사양'은 사양합니다.

요즘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광고나 집으로 들어오는 광고지들을 보면 '선택사양'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자동차의 경우를 보면 '에어컨'이나 '에어백' 등과 같은 것, 아파트의 경우에는 '벽지'나 '부엌 시설'같은 것을 ''선택사양'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주문품의 경우에 선택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품목을 가리킬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인 이 '사양'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요? 이것은 우리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일본에서 만들어 쓰는 한자어인 '시요'를 우리식 발음으로 '사양'이라고 읽은 것에 불과한 말입니다. 그리고 '옵션(option)'이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영어 표현이지요? 단순히 주문품의 내용이나 모형을 제시한 것이라면 그냥 우리말..

'중식제공'을 → '점심식사 제공'으로...

흔히 관공서나 음식점을 지나다 보면 간혹 '중식제공'이란 말을 간판에 써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중식'이라 하면 '간식'이나 '식사와 식사 중간에 먹는 음식'이 아닌 '점심 제공'이란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식제공'이란 말은 본래 '점심 식사를 가리키는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일본식 한자어가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기업체 심지어 관공서에서도 일정표나 알림표에 적어놓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식사를 대신할 '때'나 '식사'와 같은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한자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앞으로는 '점심식사드립니다'나 '점심식사 제공' 정도로 바꿔 쓰면 좋겠습니다.

'고수부지'는 일본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여름엔 연일 계속되고 있는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적 있으시죠? 더위를 식히기 위해 한강 고수부지에 나가 돗자리를 깔아놓고 강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신문에 실리기도 하는데요.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엔 '한강 고수부지에서 시민들 늦게까지 열대야 피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고수부지'란 말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죠?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한강변 '고수부지'는 서울시민의 휴식처로, 큰 역할을 해왔는데 강변에 버려진 땅들이 새 단장되었을 때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곳을 '고수부지'라고 불렀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정확한 뜻도 모른 채 따라 쓴 것이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쓰는 통용어가 돼버렸습니다. '고수부지'란 말은 '물이 차올랐을 때만 물에 잠기는 땅..

'뽀록나다'를 쓰는 것은 자신의 경박함을 '들통 내는' 것

우리말 중에는 외래어인데도 그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해져서 오히려 그것이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 그것도 순수 고유어처럼 느껴지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예로 '뽀록나다'란 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뽀록나다'란 말은 라는 뜻을 가진 속어인데, 다른 일본식 외래어와는 다르게 비교적 나이 든 어른들보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뽀록나다'란 말은 언뜻 보기에는 '뽀록'이라는 명사와 '나다'라는 동사가 결합을 한 순수 우리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실은 '넝마, 누더기'라는 의미와 함께 파생적인 의미로 '허술한 것, 결점'이란 뜻을 갖고 있는 일본어 '보로[ぼろ(襤褸)]'가 우리말과 결합해서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와서는 '뽀록'이라는 발음으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