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75

자끄 프레베르(Jacques Prevert)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 뭔가 단순한 것 뭔가 쓸 만한 것을 그릴 것 그다음엔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그림을 걸어 놓을 것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맘먹고 오는 것이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하는 법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무관한 법 새가 날아올 때는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그리고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모든 창살을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새의 초..

자끄 프레베르(Jacques Prevert)

아침 식사 그이는 잔에 커피를 담았지 그이는 커피잔에 우유를 넣었지 그이는 우유 탄 커피에 설탕을 탔지 그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커피를 저었지 그이는 커피를 마셨지 그리고 그이는 잔을 내려놓았지 내겐 아무 말 없이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 말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이는 일어났지 그이는 머리에 모자를 썼지 그이는 비옷을 입었지 비가 오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이는 빗속으로 가버렸지 말 한마디 없이 나는 보지도 않고 그래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지 * * * * * * * * * * * * * * * *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1900년 2월 4일 ~ 1977년 4월 11일)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영화 각..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살갗을 찌르는 꼿꼿한 밀 이삭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를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듯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 * * * * * * * * * * * * * * * 프랑시스 잠은 운동주 시인의 과 백석 시인의 에 등장하는 프랑스 시인이다. 어머님, 나는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빗방울은 늘 한 장소에서 두드리고 다시 또 일념으로 두드린다...... 초췌한 이 마음을 두드리는 그대 눈물 한 방울.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괴로움은 늘 한 장소에서 시간처럼 집요하게 소리 울린다 하지만 그 잎과 마음에는 밑 빠진 공허가 안에 들어 있기에, 나뭇잎은 빗방울을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마음도 송곳 같은 그대를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 * * * * * * * * * * * * * * *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그의 이름은 잼스dʒɛms가 아니라 잠ʒam으로 발음됨)은 1868년 12월 2일 오트피레네 주 투르네에서 태어나 1938년 11월 1일 바스피레네 주 아스파랑에서..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집 안은 온통 장미들로 가득하리라... 집 안은 온통 장미와 벌들로 가득하리라. 오후에는, 만도의 종소리 들려오고, 투명한 보석 빛깔의 포도알들은 느리게 움직이는 그늘 아래 햇살을 받으며 평화롭게 잠들어 있으리라. 아, 그곳에서 나는 그대를 마음껏 사랑하리! 나는 그대에게 바치리, 스물네 살의 내 온 마음을, 그리고 장난기 넘치는 내 마음을, 나의 오만과 백장미 같은 나의 시를. 하지만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하고, 그대는 아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알고 있을 뿐이다, 만일 그대가 살아있다면, 그래서 나처럼 초원 한 복판에 있다면, 우리는 황금빛 꿀벌 아래에서, 시원한 시냇물가, 무성한 나뭇잎 아래에서, 웃으며 입 맞추리라는 것을, 귀에 들리는 건 오직 태양의 열기뿐. 그대의 귓가엔 개암나무..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

슬픔 나는 힘과 생기 친구들과 쾌활함을 잃었다 천재성을 믿게 했던 자존심도 잃었다 진리를 접했을 때 그것이 나의 벗이라 믿었다 진리를 이해하고 느꼈을 때 이미 그것에 진저리 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고 진리를 모르고 산 사람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셈이다 신이 말씀하시니 우리는 답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 * * * * * * * * * * * * * Tristesse J'ai perdu ma force et ma vie, Et mes amis et ma gaieté; J'ai perdu jusqu'à la fierté Qui faisait croire à mon génie. Quand j'ai connu la Vérité, J'ai ..

쥘 피에르 테오필 고티에(Jules Pierre Théophile Gautier)

지는 해 노트르담 성당 얼마나 아름다운가 빅토르 위고 어느 저녁 뚜르넬 다리를 지나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노트르담 사원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불타는 지평선에는 장엄한 구름 하나가 막 비상하려는 거대한 새처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금빛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빛이 있었지. 정면이 돌 레이스로 장식된 탑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전나무 숲처럼 솟아있는 첨탑, 이상한 얼굴에 강인한 육체를 지닌 천사들이 올라앉아 있는 박공들이, 밝은 배경 때문에 까맣게 보인다. 주교저택은 엄마 발치에 잠든 아이처럼 성당발치에 그 모습을 보이고, 그 그림자는 신비롭고 어둡게 주위에 늘어져 있다. 저 멀리, 붉은 햇살이 강변의 어느 집 십자창에 불을 붙인다. 공기는 상쾌하다. 물을 아치다..

쥘 피에르 테오필 고티에(Jules Pierre Théophile Gautier)

비둘기 무덤이 있는 저 언덕 위에 푸른 깃털처럼 아름다운 종려나무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데, 저녁마다 비둘기는 보금자리를 만들고 몸을 폅니다. 하지만 아침이면 그 비둘기는 목걸이를 빼놓듯이 거기를 떠나는데, 우리들은 푸른 하늘에 하얀 것이 날거나 멀리 어느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봅니다. 나의 영혼도 비둘기처럼 그 나무 위에 머무는데, 저녁때마다 희망의 상징, 비둘기는 새벽빛이 들자마자, 날개를 파닥거리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 * * * * * * * * * * * * * * * Les colombes Sur le coteau, là-bas où sont les tombes, Un beau palmier, comme un panache vert, Dresse sa tête, où le soir le..

쥘 피에르 테오필 고티에(Jules Pierre Théophile Gautier)

바닷가에서 드높은 창공에서 달님이 손에 든 오색 찬란한 큰 부채를 잠시 방심한 사이 바다의 푸른 융단 위에 떨어뜨렸소. 건지려고 달님은 몸을 숙여 은빛 고운 팔을 내밀었으나 부채는 흰 손을 빠져나가 지나는 파도에 실려나갔소. 그대에게 부채를 돌리기 위해, 달님이시여, 천 길 물속에라도 뛰어들리다, 그대가 하늘에서 내려오신다면 이 몸이 하늘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 * * * * * * * * * * * * * * * Au bord de la mer La lune de ses mains distraites A laissé choir, du haut de l'air, Son grand éventail à paillettes Sur le bleu tapis de la mer. Pour le ravoir el..

장 콕토(Jean Cocteau)

몽마르트르의 축제 - 장 콕토 : 옮긴이 전채린(田彩麟) 이 세상은 만인의 것이요 너무 그네를 높이 굴리지 말아요 민물의 수병(手兵) 같은 이, 어두운 밤은 그대들의 금빛 닻일랑 비웃으며 말없이 선 채로 큰 길가에 체취를 흠뻑 흩뜨리는 수병복의 그대들을 마치 압지가 물 빨아들이듯 마셔버리고 있소. Fe^te de Montmartre - Jean Cocteau Ne vous balancez pas si fort Le ciel est a` tout le monde Marin d'eau douce la nuit profonde Se moque de vos ancres d'or Et boit debout en silence Comme du papier buvard Votre dos bleu qui en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