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71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밤의 가스파르 중 오! 몇 번이나 나는 스카르보를 보고 들었던가, 황금빛 꿀벌로 얼룩진 남색 깃발 위에 은화 같이 달이 밝은 한 밤중에! 몇 번이나 나는 들었던가 내 침대를 둘러싼 실크 커튼 속에서 긁어 대는 듯 울려 퍼지는 그의 웃음소리를. 몇 번이나 나는 보았던가 천정에서 떨어져서 손을 놓은 마녀의 빗자루처럼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아 춤추는 것을, 그리고 그가 사라지는가 하고 생각하자마자 그는 대당의 첨탑처럼 커지고 또 커져서 달빛을 가리고 그의 뾰족한 모자에서 금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의 몸은 푸르게 변하고 그리고 마치 촛농처럼 투명해졌다. 그의 얼굴은 꺼져가는 양초처럼 창백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사라졌다. * * * * * * * * * * * * * * * *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밤의 가스파르 중 아! 내가 들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밤바람의 음산한 울림이었던가? 아니면 교수대에 매달린 죽은 이의 한숨인가? 아니면 그것은 나무가 불쌍히 여겨 보호해 주는 귀뚜라미의 울음이었던가? 그것은 죽음의 소리에 멀어버린 귓가에서 파리가 먹이를 찾는 신호인가? 아니면 벗겨진 머리의 피투성이 머리칼을 잡아 뜯는 풍뎅이인가? 아니면 아마도 죄어진 그 목을 장식하려고 기다란 머슬린을 짜는 몇 마리의 거미인가? 그것은 지평선 너머 마을의 벽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붉은 석양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목 매달린 시체. * * * * * * * * * * * * * * * *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 ; 알로이우스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1807년 4월..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밤의 가스파르 중 "들어봐요, 들어봐요...! 창백한 달빛에 비친 당신의 유리창에 물방울을 흩뿌려 울리게 하는 것은, 나 옹딘예요, 그리고 여기 무지개 빛 가운을 걸친 저택의 아가씨가 발코니에 서서 별이 총총한 밤의 아름다움과 잠든 호수를 바라보고 있어요, 흐름을 헤엄치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물의 요정이고, 흐름의 하나하나가 나의 거처로 가는 오솔길이며, 그리고 나의 거처는 깊은 호수 속에 불과 흙과 공기의 세모꼴 속에 물로 만들어져 있죠. 들어봐요, 들어 봐요...! 나의 아버님은 푸른 버드나무 가지로 물가를 찰랑거리고 계시죠, 그리고 나의 자매들은 그 물거품의 팔로 물백합, 글라디올러스가 우거지 푸른 풀의 섬을 쓰다듬고, 수염을 드리우고 구부정하게 강물에서 낚시하는 버드나무를 놀려대지요." 낮은 목소리..

파울 첼란(Paul Celan)

눈 하나 열린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 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 눈 하나 :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 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은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있는 눈 등.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 * * * * * * * * * * * * * *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

파울 첼란(Paul Celan)

어느 돌을 네가 들든 어느 돌을 네가 들든 - 너는 드러내 버린다. 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벌거벗긴 그들은 이제 짜임을 새롭게 한다. 어느 나무를 네가 베든 - 너는 짜 맞춘다. 그 위에 혼(魂)들이 또다시 고일 잠자리를, 마치 흔들리지 않을 듯이 이 영겁(永劫) 또한. 어느 말을 네가 하든 - 너는 감사한다 사멸(死滅)에. * * * * * * * * * * * * * * * *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월 23일 ~ 1970년 4월 20일 향년 49세)은 루마니아 출생의 독일어 시인이다.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전쟁으로 중단하고, 소련군 점령 후에는 빈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최초의 시집을 발표하였다(1947). 194..

파울 첼란(Paul Celan)

흑암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주여. 잡힐 듯 가까이. 이미 잡혀서, 주여, 저희가 하나하나의 몸이 당신의 육신인 듯, 서로를 움켜쥐고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에게 기도하소서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바람에 뒤틀린 채 저희가 갔습니다 향하여 갔습니다. 물 괸 웅덩이와 분화구를 찾아 몸을 굽히려고. 물 마실 곳으로 갔습니다, 주여. 피였습니다, 그건 당신께서 흘리신 피였습니다, 주여. 그것이 반짝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당신의 형상을 비추었습니다, 주여. 눈과 입이 저렇듯 열려 있고 비어 있습니다, 주여. 저희가 마셨습니다, 주여. 피와 그 피 속에 잠겨 있는 형상을,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 흑암 : '어둠' 외에도 '죽음의 밤'이라는 뜻도 있는데, 특히 예수가 십..

파울 첼란(Paul Celan)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

앙리 미쇼(Henri Michaux)

서울에서 서구 문명은, 물론, 온갖 결점을 다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모든 문명을 쓸어가는 자력(磁力)을 갖고 있다. 세계에는 얕은 즐거움, 흔들림을 향한 일방적인 충동이 있다. 일본의 옛 음악은 바람의 신음 소리와 같다. 새것은 이미 명랑해지고 있다. 중국의 옛 음악은 순수한 경이이다. 가슴에 순하고 느리다. 새것은 다른 것과 같다. 한국의 옛 음악은 비극적이고 무시무시하지만 그것을 부른 것은 기생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즐겁게 춤을 춥시다’ (그들의 현재의 음악은 망할 놈의 빠른 곡이며, 황인종 중에서도 한국인의 특색을 이루는 그 특이한 격정을 보여준다). 사람은 이제 세계의 먹이가 아니지만, 세계는 사람의 먹이이다. 사람은 오랜 침체에서 빠져나온다. 전에는 정말 울적해 있었나 보다..

앙리 미쇼(Henri Michaux)

빙산 난간도 울타리도 없는 빙산(冰山)에, 지친 늙은 까마귀들과 요사이 죽은 수부들의 망령들이 북극의 마(魔)와 같은 밤에 와서 팔꿈치를 괸다. 빙산, 빙산, 영원한 겨울의 무종교(無宗敎)의 대성당(大聖堂), 유성(流星) 지구의 머리 위에 씌운 빙모(氷帽) 추위에서 태어난 너의 기슭은 얼마나 고귀하고 또 순결한가. 빙산, 빙산, 북대서양의 등,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바다 위에 얼어붙은 장엄한 불상(佛像), 출구(出口) 없는 죽음의 번쩍거리는 등대, 침묵의 절규는 수세기 동안 계속된다. 빙산, 빙산, 필요 없는 고독인, 갇히고 멀고 벌레 없는 나라, 섬들의 가족, 샘물의 가족인 그대들은 보면 볼수록 얼마나 나에게는 친숙한 것이냐--- * * * * * * * * * * * * * * * * 앙리 미쇼(He..

앙리 미쇼(Henri Michaux)

노 젓다 네 이마를 네 배를 네 삶을 나는 저주했다 네가 걸어 다닌 거리를 네가 만진 것들을 나는 저주했다 나는 저주했다 네 꿈의 내부를 네 눈에 웅덩이를 파 못 보게 하고 네 귀에는 곤충을 넣어 못 듣게 하고 네 뇌에는 스펀지를 넣어 이해 못 하게 했다 나는 네 육체의 넋을 죽였으며 네 깊은 삶을 동결시켰다 네가 숨 쉬는 공기는 너를 숨 막히게 하고 네가 숨 쉬는 공기는 굴 속의 공기 같다 벌써 내쉰 공기 하이에나가 버린 공기다 이 썩은 공기를 아무도 숨 쉴 수 없다 네 육체는 축축하고 네 살갗은 공포에 질려 땀을 흘린다 네 겨드랑이에서는 멀리서도 묘지냄새가 난다 동물들이 네 길목에 서있다 밤마다 개들은 네 집 쪽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너는 도망갈 수 없다 꼼짝달싹할 수 없다 피곤해서 네 몸은 납덩이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