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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미

"내가 어릴 때는 오자미를 갖고 노는 놀이를 많이 하였다.""운동회 때 바구니 터뜨리기에 써야 하니까 한 사람 앞에 두 개씩 오자미를 만들어오도록 하세요." '오자미'는 '콩이나 모래를 넣어 만든 손바닥만 한 헝겊이나 구멍 난 양말을 사용해서, 사방을 둘러 꿰매 어린이 주먹만 하게 만들어서 던지면서 노는 놀이도구'이다.  '오재미'는 비표준어이다. '오자미'는 국어대사전에도 우리말처럼 등록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순우리말로 알고 있으나, 원래 콩이나 모래를 집어넣은 ‘놀이주머니’를 가리키는 일본말 ‘おじゃみ’다. 그리고 이 오자미를 가지고 노는 놀이를 '오테다마〔お手玉〕'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가난한 아이들이 시작한 놀이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이야기

신유박해 때 동복형 정약종(丁若鍾, 조선의 실학자이자, 가톨릭의 복자, 1760~1801)의 순교와 더불어, 또 다른 이복형 정약현(丁若鉉, 1751~1821)은 신지도(薪智島)에, 동복형 정약전(丁若銓=兵曹佐郞병조좌랑, 1758~1816)은 흑산도(黑山島)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강진(康津)에 유배되었다. 「여(與)함이여 마치 겨울에 냇물을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마치 너희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도덕경(道德經)》의 글귀를 따라 '여유당(與猶堂)이라 호를 삼기도 한 정약용은, 경세치용(經世致用)의 대강 속에 그의 학문을 재구성한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이래의 실학자였고, 또 그의 실학을 실천했던 정치가이기도 했다.곡산(谷山) 부사 때 유지와 겨를 써서, 얼음을 얼구어 여름..

나카하라 추야(中原 中也, Nakahara Chūya)

" style="color: #000000;">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오늘도 눈이 조금 내려 쌓이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오늘도 바람마저 불어 지나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예를 들자면 여우 가죽을 댄 옷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눈이 조금 내려서 오그라들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아무런 희망 없이 바람도 없이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권태로움 속에서 죽음 꿈꾸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아프고 아프도록 두려움 들고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딱히 한 일도 없이 하루 저물지……  * * * * * * * * * * * * * * *  * 나카하라 추야(中原 中也, Nakahara Chūya, 1907년 4월 29일 ~ 1937년 10월 22일)는 카시무라 주야(柏村 ..

수제비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는 별식으로 감자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우리 속담에 '수제비 잘하는 사람이 국수도 잘한다'라는 말이 있다." '수제비'는 밀가루를 묽게 반죽하여 끓는 장국에 조금씩 떼어 넣고 익힌 음식이다.서민 음식으로 잘 알려진 수제비는 고려시대에 조금의 기록만 있을 뿐, 그 기록이 적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고증하기 어렵다고 한다.다만 그 유래를 중국에서 530~550년 사이에 제작된 '제민요술' 속에, '박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걸로 일부만 확인할 수 있다.수제비가 서민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예전엔 밀의 생산이 많지 않았던 걸로 봤을 때, 귀한 음식으로 취급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름이 '수제비'가 된 데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 먹는다..

파장떨이

장(場)의 끝무렵. 또는 끝내기 위해 싸구려로 물건을 넘기는 일.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고은, '선제리 아낙네들', "만인보· 1", p. 148)  이완용의 적수 송병준은 1억 원 내야 한다고 했는데합방 공로 차지하려고그 1억 원을 3천만 원으로 파장떨이 해버렸다 (고은, '혈의 루', "만인보· 1", p.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