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때 동복형 정약종(丁若鍾, 조선의 실학자이자, 가톨릭의 복자, 1760~1801)의 순교와 더불어, 또 다른 이복형 정약현(丁若鉉, 1751~1821)은 신지도(薪智島)에, 동복형 정약전(丁若銓=兵曹佐郞병조좌랑, 1758~1816)은 흑산도(黑山島)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강진(康津)에 유배되었다. 「여(與)함이여 마치 겨울에 냇물을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마치 너희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도덕경(道德經)》의 글귀를 따라 '여유당(與猶堂)이라 호를 삼기도 한 정약용은, 경세치용(經世致用)의 대강 속에 그의 학문을 재구성한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이래의 실학자였고, 또 그의 실학을 실천했던 정치가이기도 했다.곡산(谷山) 부사 때 유지와 겨를 써서, 얼음을 얼구어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