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告 別 68. 告 別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뢰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 孤島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 ---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내가 떠..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7. 男사당 67. 男사당 노천명(盧天命)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야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려 람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男聲이 십분 굴욕된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1940. 삼천리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6. 사 슴 66. 사 슴 노 천 명(1912-1957)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 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1938. ꡔ산호림ꡕ * 사슴..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5. 전라도 가시내 65.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李庸岳) 알록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4. 오랑캐꽃 64. 오랑캐꽃 이용악(李庸岳)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홈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ㅡ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1940. 인문평론 * 이 작품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연약하고 순수한 한민족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형상화한 시이다. 이 시는..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3. 낡 은 집 63. 낡 은 집 이 용 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에 산호관제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고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