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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金時習)

조선 초기의 학자(1435~1493). 자는 열경(悅卿)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 또는 동봉(東峯)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승려가 되어 방랑 생활을 하며 절개를 지켰다. 유교와 불교의 정신을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저서에 《매월당집》이 있다.  충남 계룡(鷄龍)의 한 맥이 스러진 부여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 앞 계곡에는 반체제(反體制)의 상징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글을 썼다는 벼루바위가 있다. 매월당은 시상을 종이에 옮기고는 흐르는 계류에 흘려보냈다.또 쓰고는 흘려보냈다.그는 그의 시를 그렇게 항상 흘려보냈다 한다. 작품이 없다고 예술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가치의 실천을 최초로 매월당이 하였다.이것은 발상부..

다람쥐

다람쥐는 북아메리카와 동아시아 북동부에서 사는 설치류의 속들의 총칭이다. 등에 줄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원은 'ᄃᆞᄅᆞᆷ+쥐'로, 'ᄃᆞᄅᆞᆷ'은 '달리다(走주)'라는 뜻인 'ᄃᆞᆮ다'의 명사형이다. 재빠르게 잘 달리는 쥐라는 뜻인데, 현대국어식으로 바꾸면 '달림쥐' 또는 '달리기쥐' 라고 할 수 있겠다.  '다람쥐'는 'ᄃᆞᄅᆞᆷ쥐'라는 형태로 18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ᄃᆞᄅᆞᆷ쥐(豆鼠두서) (18세기), 다ᄅᆞᆷ쥐(鼯오) , , , 등에 수록되어 있다.그리고 ‘다ᄅᆞᆷ쥐’나 오늘날의 형태인 ‘다람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이다. '손금 없는 사람'(하도 손바닥을 비벼대서 손금이 다 닳아 없어진 사람, 즉 아부하는 사람)이란 표현이 '다람쥐 같은 놈'(다람쥐가 뒷다리로 서서..

김유신(金庾信) 장군 이야기

시집도 안 간 누이동생이 아이를 배자, 김유신은 나라안에 이 불의를 널리 알리고, 나뭇가지 위에 아이 밴 누이동생을 얹혀 불을 질렀다.만약 이 불길의 연기를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빨리 발견하지 못했던들, 김춘추(金春秋)의 연인이던 그의 누이는 분살(焚殺)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당(唐) 나라와의 싸움에서 그의 둘째 아들 패장(敗將) 원술(元述)이 살아 돌아왔다.후공(後功)을 위해 못 죽고 돌아왔다 하니까, 김유신(金庾信)이 칼을 빼들고 참형(斬刑)하려 했다.이 역시 왕이 말려 의절(義絶)만 하고, 평생 보질 않았다.유신이 죽은 후에 원술이 돌아와 어머니를 뵙겠다 하니까, 도리를 못 지킨 자식은 자식이 아니라고 끝내 대면하지 않았다. 김유신이 조선시대 사람이라면 그런 의로움이 훌륭할 것도 없다.통일신라시대 ..

콘래드 포터 에이컨(Conrad Potter Aiken)

그대와 함께 듣던 음악 그대와 함께 듣던 음악 예사 음악 아니었고 그대와 함께 뜯던 빵 예사 음식 아니었네 이제 그대 내 곁에 없어 온갖 만사 쓸쓸하네 한때 그리 아름답던 것들 죄다 가고 말았기에 이 식탁 이 식기에 한때 그대 손길 갔었고 이 잔 쥐었던 그대 손가락 눈앞에 선하네 이들이, 그리운 이여, 어찌 그댈 생각할까 만은 이들에 남긴 그대 손길 사라지지 않으리 내 맘속에서 그대 저들 사이 돌아다니며 손길과 눈으로 저들 축복해 주었기 때문 그러니 저들 내 맘속에서 늘 그대 기억하리 한때 그대 알았음을, 아름답고 슬기로운 그대를 * * * * * * * * * * * * * * * Music I Heard Music I heard with you was more than music, And bread ..

하늘강

푸르고 깊은 하늘을 강으로 비유한 말.  떨리는 추위 하늘강에 누이니그리운 얼굴들 별빛으로 내려오고속수무책의 예감 하늘강에 누이니어둔 강기슭 달빛 가득하네 (고정희, '하늘강', "눈물꽃", p. 34)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시베리아 황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갈래 하늘강에 만가지 노을빛 겹치는 시베리아 (고정희, '처서 무렵, 시베리아', "아름다운 사람 하나", p. 44)

사명당 사첫방

'매우 추운 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흔히 사명대사라고 하는, 사명당은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승려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의 활약을 과장한 많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그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명하다.사명당이 일본과 강화를 하기 위해 일본에게 건너갔는데, 그때 왜왕이 사명당을 태워 죽이려고 구리로 집을 지어 그 속에 가두고 사면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나 사명당은 사벽(四壁)에 서리 상(霜) 자를 써 붙이고, 방석 밑에 얼음 빙(氷) 자를 써 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방이 타기는커녕 방안에 얼음이 얼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몹시 추운 방을 가리켜 '사명당 사첫방'이라고 하게 되었다. 사첫방의 '사처'는 '하처(下處)'가 변해서 된 말로, 점잖은 손님이 객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