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높은바위 2024. 10. 6. 06:42

 

조선 초기의 학자(1435~1493). 

자는 열경(悅卿)이며 호는 매월당(梅月堂또는 동봉(東峯)이다

생육신의  사람으로승려가 되어 방랑 생활을 하며 절개를 지켰다

유교와 불교의 정신을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 지었고저서에 《매월당집 있다.

 

충남 계룡(鷄龍)의 한 맥이 스러진 부여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 앞 계곡에는 반체제(反體制)의 상징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글을 썼다는 벼루바위가 있다.

 

매월당은 시상을 종이에 옮기고는 흐르는 계류에 흘려보냈다.

또 쓰고는 흘려보냈다.

그는 그의 시를 그렇게 항상 흘려보냈다 한다.

 

작품이 없다고 예술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가치의 실천을 최초로 매월당이 하였다.

이것은 발상부터 남이 볼 것을 전제한 요즈음 창작활동과 적이 대조적이며, 타인 속의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의 완성과 충실을 시도한 주아적사유(主我的思惟)의 나타남이다.

이 같은 한국적 사유는 잦은 유매의 정치풍토와 토착된 은일사상(隱逸思想)이 결합되고 불교의 양생양심해탈(養生養心解脫)의 개인주의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역시 반체제적인 기풍 때문에 많은 일화를 남긴 근세(近世) 고승(高僧) 김수월(金水月), 송만공(宋滿空), 방한암(方漢岩)을 문하인으로 가진 경허(鏡虛) 스님(1912년 작고), 그에게 승통을 물려준 유명한 만화대사(萬化大師)가 살았던 곳도 계룡의 한 기슭이다.

계룡산의 토참적인 힘을 빌어 이조왕조에 꾸준히 저항했던 반체제의 영맥이 그곳 물을 먹고 사는 스님들에게 반체제의 승통을 잇게 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