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조선의 천재들

높은바위 2024. 10. 10. 07:04

왼쪽부터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

 

언어를 따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옛날에도 이 땅엔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음을 느낀다.

남녀노소 가림 없이 각 분야 수많은 인재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가부장적 측면에서, 문인들 중에서 보면, 김시습, 율곡 이이, 정약용 등의 문인들과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실제로 불리었던 3명, 벽초 홍명희와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이 "조선 3대 천재"라는 칭호를 누렸다.

그들은 문인이자 언론인이었고, 2.8 독립 선언서와 3.1 운동 "독립 선언문"을 작성했으며, 홍명희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모두 한때 동아일보에 몸 담았었으며, 최남선이 발행한 '소년'지에 참여한 1910년 5월에 홍명희가 22세, 최남선이 20세, 이광수가 18세였다.

 

훗날 이들은 변절했다.

항일에서 친일로, 홍명희는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며 가족들을 데리고 월북했다.

부수상 등으로 북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아버지와 15살 밖에 차이 안 나서, 아비와 맞담배질하는 장남 홍기문은 "조선왕조실록"과 현존하는 "향가" 연구의 대가이며, 손자 홍석중은 "소설 황진이"로 2004년 남한에서 수여하는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 3대 천재"에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향가"를 해독한 무애 양주동도, '나도 조선 3대 천재로 불러 달라'라고 했던 일화도 있다.

친일 잔재의 청산과 반공, 승공, 평화의 목표가 우리의 생존 바람인데, 

"천재란 무엇이냐 ― 높은 목표와 그것에 도달하는 수단을 바라는 것이다."라는 철학자 니체의 말이 펄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