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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앤 더피(Carol Ann Duffy)

첫사랑 첫사랑이 립스틱만큼 입술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말하는 꿈에서 깨어나, 난 네 이름을, 수년간의 침묵 후에, 베개 머리맡에 말하네, 네 이름의 힘은 날 발가벗은 맨몸으로 창가에 다가가, 빛에 흔들리는 정원에 이름을 재차 말하게 하네. 아이의 사랑이었네, 하나 난 그 영상들을 눈에 힘주어 떠올리네, 처음엔 초점 없이 흐릿하게, 그러곤 거의 또렷하게, 낡은 영화가 느린 속도로 상영되듯이. 종일 난 그것을 보네, 내 연인의 두 눈을, 거울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하늘을 담은 창문에서, 네가 그 어디에 있더라도. 그리고 나중에 여기, 오래전에 죽은, 한 별이 정확히 눈물방울 크기처럼 보이네. 오늘 밤, 꿈속에서의 연애편지가 내 가슴에 말을 더듬네. 얼마나 진지했던가. 넌 그 마지막 저녁에도 내 머릿속에 미소..

아네모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 봄에 붉고 푸르고 흰 꽃이 핌. 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이라는 뜻. 바다 가까운 露台(노대) 우에아네모네의 고요한 꽃방울이 바람에 졸고 (김광균, '午後오후의 構圖구도', "와사등") 바람둥이는 아네모네의 꽃말그 꽃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겹으로 마음을 감춘 꽃송이 속에혼자 숨어 있어도 좋은섬 하나 떠 있다 (박제천, '섬을 찾아서', "너의 이름 나의 시", p. 32) 한 줄기는 보라꽃花冠(화관)이 꿈 같다절반은 부러지고할 수 없이 정숙하게너는눈에 든다정이 가는 곳이면 一步(일보)아무 말없이 一步(일보) 걸음마를 타듯다가서고 싶다 상큼하고 가냘픈냄새도 빛도 없이저물어가는 물 위로 (김영태, '아네모네', "초개수첩", p. 57)

시나위

'시나위'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남부 지방 무속 음악의 하나로, 정형화되지 않은 기악곡이다. 무당들이 다양한 행사에서 벌이는 굿판이 '시나위'이다. 한문으로는 '심방곡(心方曲)', '신방곡(神房曲)'으로도 쓰고, 음역 할 때는 '신아위(神娥慰)' 등으로 쓴다.  기본적인 틀은 있지만 고정된 선율이 없고, 유동적이며, 즉흥적인 선율이며, 각종 악기가 허튼가락을 연주하는 곡이다. 불협화음을 내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데 묘미가 있다.장단은 산조와 같고, 피리·젓대·해금·장구·징으로 되어 있으나, 가야금·퉁애·태평소 등을 곁들이기도 하고,요즈음은 아쟁이 끼이기도 하고, 또 독주 악기로 연주하기도 한다.  '시나위'라는 단어의 어원은, 신라 때 노래를 뜻하는 '사뇌(詞腦)(또는 사뇌가)'에서 비롯했다..

마당발¹

볼이 넓은 발. 여기저기 안 나타나는  데 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 발바닥 한번 마당발이라짚세기 따로 삼아 신어야 한다 (고은, '미제 술집 심부름꾼', "만인보· 6", p. 152) 남의 집 부엌이나 뒤란에그놈의 마당발 들여놓기 망정이지 (고은, '뻔뻔이 마누라', "만인보· 9", p. 150)  우리 마당발들이 벋디디면그 발자국으로 나머지 땅에 이어져이 동네도 나라가 되어 일어선다 (하종오, '행로',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p. 121)

마음은 매일 다듬어야

부인이 넷인 사나이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선고받은 그는 평상시 첫째로 애지중지하던 부인에게 죽음에의 동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색을 하며, "살아서는 함께 떨어질 수 없었지만, 죽음까지는 결코 동행할 수 없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낙심한 사나이는 둘째로 사랑하던 부인에게 말했으나, "가장 아끼던 부인도 안 가는데 내가 왜 갑니까?" 셋째 부인에게 말하니, "장지까지는 따라가지요."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평상시에는 돌아보지도 않던 넷째 부인에게서 사나이는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된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끝까지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이 사나이는,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당신에게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베풀었어야 하는 건데...."라고 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

예카테리나 안드레예브나 베케토바(Ekaterina Andreevna Beketova)

나이팅게일 저녁에는 봄에 피고,나이팅게일은 우리 정원으로 날아가고,밤의 시원함과 합쳐지고,라일락은 향기의 가치가 있습니다.따뜻한 저녁, 향긋하고 맑은 날씨,조용히 정원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고,— 당신은 그것이 어떻게 듣게 될 것입니다, 감미로운 목소리,새벽부터 새벽까지 노래하리라.그리고당신은 맑은 하늘에 초승달이 어떻게 빛나고 타오르는지,그리고 향기로운 머리 장식을 한 사과나무처럼 색으로하얗게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달이 당신의 방을 들여다볼 것입니다.어린 봄이 보일 것입니다.당신은 기분이좋고 편안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전혀 잠을 못 이룰 것입니다.잠이 들면 나이팅게일의 노래가말없이 노래로 잠들게 하고,봄꽃의 싱그러운 향기가 너를 잠들게 하리라. ​ * * * * * * * * * * * *..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Louise Elisabeth Glück)

매장의 공포  빈 들판아침나절시신은 부름 받기를기다리네.영혼은 그 옆에 앉았네작은 바위 위에.그것에 형체를 다시 만들어주려고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생각해 보렴 그시신의 외로움을.밤에 삭막한 들판을따라가는그것의 그림자를.꽁꽁 묶인온몸을.그토록 긴여행을. ​이미 아득하고 경련하는마을의불빛들그 불빛들이 광선으로훑어볼 때시신을 위해 멈추진 않네.얼마나 멀어졌는가.그것들이 보이기에는.목재로 된 문들,빵과 우유테이블 위에묵직하니 놓인. ​* * * * * * * * * * * * * * * The Fear of Burial In the empty field, in the morning,the body waits to be claimed.The spirit sits beside it, on a small r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