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418

북한의 언어 : 마가을

'마가을'이란 말은 '한창 고비를 지난 마감 무렵의 가을철'이라고 북한의 은 풀이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인 '마가을'은 남한의 '늦가을'과 같은 뜻입니다. '마가을'이 활용된 어휘로는 가을이 끝나갈 무렵의 쌀쌀한 날씨를 뜻하는 '마가을날', 늦가을 무렵에 부는 썰렁한 바람을 의미하는 '마가을바람', 늦가을 절기에 느낄 수 있는 햇빛인 '마가을빛', 짧은 하루 해를 뜻하는 '마가을해'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타는 듯이 붉게 물든 마가을의 묘향산은 정말로 아름답다', '오늘 날씨는 금세 차디찬 빗방울이나 첫눈이 내릴 것처럼 음산하게 흐린 마가을날이야.' 여기서 '마가을'은 모두 '늦가을'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스승'의 어원

우리말 속담에 '자식을 보기엔 아비만 한 눈이 없고, 제자를 보기엔 스승만 한 눈이 없다'란 말이 있습니다.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가 가장 잘 알고, 제자에 대해서는 스승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제자로부터 '스승'이란 존재는 언제나 높고 큰 존재여야 하는데 이 '스승'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어원을 살펴볼까 합니다. 이 '스승'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요, 그 첫째가 '스승'이란 단어의 기록이 에 보이는 "김대문이 이르기를 '차차웅(次次雄)'은 우리말의 '무당'을 뜻하는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무당은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그를 외경하여 마침내 존장을 '자충(慈充)'이라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차차웅(次次雄)'이나 '자충(慈充)'은 분명한 것은 아니나 '스..

북한의 언어 : 차요시하다

'차요시하다'란 말은 북한 일상생활에서 '무시하다', '사소하게 여기다'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북한의 에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뜻으로 풀이돼 있지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시한다거나 사소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차요시'는 순수 한자어지만 북한 사전에 다듬어진 어휘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생활용어로 이미 굳어진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북한 주민들도 이 어휘를 상당히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설비, 설비하면서 생산을 차요시해도 안되고 생산, 생산하면서 설비를 마구 써도 안돼." 이 말은, '설비, 설비하면서 생산을 무시해도 안되고 생산, 생산하면서 설비를 마구 써도 안돼'란 뜻이고요. "철이 동무, 차요시한 부서에 있다고 해서 업무를 소홀히 하면 안..

이녁

우리말은 높임말이 아주 잘 발달해서 위, 아래로 예의를 갖추는 법이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호칭 가운데 2인칭 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요. 그 어렵다는 2인칭 중에 '이녁'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녁'은 우리가 잘 모르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준어로 1936년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 '이녁'을 표준어로 규정한 이래로 현재의 여러 국어사전도 모두 이를 따르고 있지요. '듣는 이를 조금 낮추어 가리키는 말', '윗사람을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는 말'이라고 등재되어 있는데요. 이 '이녁'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사이에서 아직도 더러 쓰이는데 어감이 매우 친근하고 정겹지요. 자신과 비슷한 상대이면서도 '너나들이(서로 너니 나니 하면서 허물없이 지냄)'가 아니어서 '너'라고 부르기는 어정쩡할 때 ..

북한의 언어 : 지르보다, 눈딱총을 주다, 손가락총질, 과따대다, 오구탕을 친다

사람들의 행동을 나타내는 말들 중에 북한에서 쓰이는 말과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 다른 것들이 꽤 있습니다. 우선 사람을 노려볼 때 '지르본다'라고 합니다. '노려보다', '지르보다' 그 어감이 비슷하긴 하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람의 행동이 눈에 거슬릴 때 그 사람에게 따가운 눈총을 주게 되는 일이 있는데요, 이때 쓰이는 '눈총을 주다'란 표현도 북한에서는 '눈딱총을 주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눈총' 대신 '눈딱총'을 쓰는 거죠. 그리고 '삿대질'을 북한에서는 '손가락총질'이라고 한답니다. 행동의 모양새 그대로를 말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제는 좀 소란스러운 광경을 생각해 볼까요? '몹시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 북한에선 '과따대다'란 말을 씁니다. 좀 생소한 말이긴 하지만 몹시 떠들어 대는 모..

돌서더릿길, 돌너덜길, 서덜길

'길'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고 이용하는 장소인 동시에, 삶의 표현에서 가장 즐겨 쓰는 말 같습니다. 저 역시 '길'에 많은 '시어(詩語)'와 '시상(詩想)'을 부여하고 있습니다만...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을 '돌너덜길'이라 하고, 돌이 많이 깔린 길을 '돌서더릿길'이라고 합니다. 또, 냇가나 강가 따위에 나 있는 돌이 많은 길을 '서덜길'이라고 합니다. 자주 안 써서 잘 모르는 돌길들이지만 순우리말로 다양한 이름이 붙어있어 정감 가는 말들입니다.

북한의 언어 : 채심하다, 걸탐스럽다

남한에서는 생소하지만 북한에서는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몇 가지 살펴드리죠. 혹시 '채심하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북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신을 가다듬어 주의하거나 항상 명심해서 마음속 깊이 새겨둔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우리 표현으로 '명심하다', '각성하다'와 비슷합니다. 북한에서도 이 두 어휘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에서 구별이 되는데요, '채심하다'에는 주로 '어떤 잘못된 행동 등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철수야, 이번에는 채심해서 공부를 잘 좀 해봐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 사람이 단단히 채심하도록 따끔하게 타일러 줘야겠다." 이렇게 사용하고 있죠. '채심하다'는 이 외에도 '마음으로 타산하..

무꾸리

'그믐산이는 판막이 바짓가랑이에 불을 옮겨 붙이고 있던 장작개비를 집어 들면서 무꾸리한테 물어보러 다니기 즐기는 아녀자가 무는 이방 하듯이 판막이 곁에다 침을 뱉고 밖으로 나갔다.'(이문구, 오자룡) '무꾸리'라는 말은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앞으로의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대하여 점을 치는 일'이라고 사전에 등재돼 있죠. 옛날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제사와 정치를 그 사회의 우두머리가 하였던 것인데, 오늘날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면서 왕은 정치를, 무당이나 판수 그 밖의 신령을 모신다는 사람은 길흉을 점치는 일을 하게 된 거죠. 점치는 일... '무꾸리'는 '묻다'와 걸리는 말입니다. 굿을 할 때 각각의 마당을 부정거리, 칠성 제석거리, 대감거리, 성주거리, 장군거리 등으로 부르는데, '무꾸리'는 '묻는+거리'..

북한의 언어 : 인차

우리와 다르게 쓰고 있는 북한말 중에 '인차'라는 부사입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어휘 중 하난데요. 이 뜻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체 없이 바로', '곧', '금방'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금방'이나 '곧' 보다는 '인차'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차'라는 말은 우리 남한에서는 전혀 쓰지 않을뿐더러 국어사전에도 올라있지 않습니다. 이런 언어차이 때문에 언젠가 북한주민을 만났던 남한주민은 '인차'라는 말을 '1차'로 해석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친구와 헤어지면서 "갔다가 언제 올래?"라고 물을 경우에 "오래 안 있을래, 금방 올 거야."라고 대답한다면, 북한주민은 "오래 안 있을래, 인차 올 거야."라고 대답..

우레

'오징어 게임'의 주연배우 이정재가 미국 토크쇼에 출연하여 한국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우뢰'와 '우레'... 네, 표준말은 '우레'입니다. 한자어 '우뢰(雨雷)'의 뜻은 '비와 큰소리'의 뜻이고, 한 단어로 합성되어 쓰이는 예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우뢰(雨雷)'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한국 고유어 '우레'를 음역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였던 것이죠. '우레'는 '천둥'의 동의어로서 번개가 칠 때 퍼져나가는 충격파, 또는 그 소리를 의미합니다. '천둥'이 한자 '천동(天動)'을 어원으로 하는 것과 달리 '우레'는 100% 순우리말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다만 '천둥'과 '우레'는 둘 다 표준어로 인정되기 때문에 '천둥이 친다'와 '우레가 친다'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