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80. 작은 짐승

높은바위 2005. 8. 22. 06:06
 

180. 작은 짐승


                               신석 정


란(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란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희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 다니는 청자가 빛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문장> 7호 1939.8.

 

1.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2.이 시는 어떤 상황을 노래한 것인지 상상하여 한편의 이야기로 꾸며 봅시다.

 

   시인은 어려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1932년 고향 전북 부안 선은리에 집을 장만한다. 그의 집은 김제 만경의 넓은 들, 내소사가 있는 서해의 명산 변산, 거기에 바다까지 갖춘 곳에 있었다. 그의 취미대로 울타리를 측백나무로 두르는 등, 집 주위에 여러 나무들을 심었다.  앞 마당에는 등나무도 심었다. 집 뒤로는 언덕을 향해 길이 나 있고, 그 언덕에 올라서면 바닷가 보인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시는 바로 그 바닷가 보이는 언덕에서 얻은 시일 것이다.

 

3.이 시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시적 자아가 과거의 자신과 난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난이는 과거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존재가 되고, 화자는 난이를 통해 자연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을 느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난이에 대한 그리움에서 자연에 대한 노래로 옮아 가게 되고, 마지막에서는 자신과 난이를 ‘작은 짐승’에 비유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었던 유년 시절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상징적 존재인 ‘난이’를 통해서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동화적 성격의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하여 시인은 “상처 입은 작은 역정의 회고”라는 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장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로 미루어 볼 때, ‘常無慾以觀其妙(사람이 항상 욕심이 없으면 묘문을 깨달을 수 있다.)’의 견지에서 본다면 인간 역시 한 마리의 작은 짐승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는 도교적 사상 근원이 이 작품에 깔여 있지만, 한편 망국의 백성으로 짓밟힐 때로 짓밟힌 그 당시의 우리는 차라리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미쳐서 날뛰는 일제를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던 고달픈 작자의 심정을 읽어 주었다면 이 시가 지닌 정신에 접근한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단순히 동화적 성격의,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동경의 시로만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시인이 망국의 백성으로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면, 차라리 이 시에는 자연에로의 회귀를 통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인의  소극적 저항이 스며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아름다운 동화 속의 세계는 결국 비애를 간직한 유년 시절이었던 것이다.

 

 

4.구성

  시적 자아의 과거에의 회상(1연)

  과거 회상의 심화(2연)

  근원 세계와 합일(3연)

  근원 세계의 확인(4연)


5.이 시의 핵심적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과거형의 시제이다. 그것은 작품 속의 모든 일들이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 그것은 난이와 내가 더 이상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된다. 시인은 그런 동화 속의 삶과는 거리가 먼 고통스럽고 암울한 세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6.주제

  생명의 근원으로의 회귀

  자연과 동화되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7.지은이 소개

 

8.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에서 ‘난이’를 작은 짐승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인가.

    *어린 시절을 근원적 평화와 순수한 세계로 회상하며 동경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시적 자아와 난이를 짐승에 비유한 것은 바로 이 순수성과 관련된다. 일체의 인위적 꾸밈이나계산 따위를 모르는 천진 난만한 심성을 시인은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에 비유한 것이다.


(2) 과거형 종결어미가 주는 의미를 말해 보자.

    *해설 참조

9.이 시는 어떤 작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나타난 자연의 세계는 지나치게  동화적이다. 3연은 차라리 동화 속 일에 가깝다. 이 시의 ‘바다’가 그의 시에 늘 등장하는 바다, 즉 ‘먼 바다, 먼 나라’와 일치하는 것이라면 역시 이 시의 그의 1930년대 전원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나름대로의 유토피아를 제시한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