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아름다운 청춘 갈대밭에 오래 누워 있던 처녀의 입은 그렇게도 갉아먹힌 듯이 보였다. 흉부를 해부하자 식도에는 구멍이 숭숭 뚫어져 있었다. 마침내 횡경막 아래 응달진 곳에서 어린 들쥐들의 둥지가 발견되었다. 조그마한 새끼암쥐 한 마리는 죽어 있었다. 다른 쥐들은 췌장과 신장을 ..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7
카로사(Hans Carossa) 옛 샘 등불을 끄고 자거라! 줄곧 일어난 채 언제까지나 울리는 것은 오직 옛 샘의 물줄기소리 하지만 내 지붕 아래 손님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곧 이 소리에 익숙해진다. 네가 꿈에 흠뻑 배어 있을 무렵 어쩌면 집 근방에서 이상스런 소리가 들릴는지 모른다. 거친 발소리에 샘 근방 자갈소리가 나며 기분 좋은 물소리는 딱 그치나니 그러면 너는 눈을 뜬다. 하지만 놀라지 마라! 별이란 별은 모두 땅 위에 퍼지고 나그네 한 사람이 대리석 샘가로 다가가서 손바닥을 그릇삼아 솟는 물을 뜨고 있다. 그 사람은 곧 떠난다. 다시 물줄기소리 들리나니 아아 기뻐하여라, 여기에 너는 혼자 있지 않으니. 먼 별빛 속에 수많은 나그네가 길을 가고 그리고 또 다시 네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 카로사(Hans Carossa : 1..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7
헤세 눈 속의 나그네 한밤 자정에 시계소리 산골을 울리고 달은 헐벗고 하늘을 헤매고 있다. 길가에 그리고 눈과 달빛 속에 나는 홀로 내 그림자와 걸어간다. 얼마나 많은 푸른 봄길을 나는 걸었으며 또 타오르는 여름날의 해를 나는 보았던가! 내 발길은 지쳤고 내 머리는 회색이 되었나니 아..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6
헤세 방랑 — 크눌프에 대한 기념 슬퍼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밤이 온다. 그때 우리는 창백한 들판을 넘어 싸늘한 달의 미소를 보게 될 것이고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쉬게 되리라. 슬퍼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때가 온다. 그때 우리는 안식하며 우리 십자가는 해맑은 길섶에 나란히 서게 되고..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5
헤세 흰 구름 오오 보라, 흰 구름은 다시금 잊혀진 아름다운 노래의 희미한 멜로디처럼 푸른 하늘 저쪽으로 흘러간다! 기나긴 나그네길을 통해서 방랑과 슬픔과 기쁨을 한껏 맛본 자가 아니고는 저 구름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같이 하얀 것, 정처없는 것을 좋아하나니..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5
헤세 안개 속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않으니 모두들 다 혼자다. 나의 삶이 밝던 그때에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에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다.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이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그 어..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4
릴케 오오 주여, 어느 사람에게나 오오 주여, 어느 사람에게나 그 사람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죽음, 그것은 그가 사랑을 알고, 의미와 위기가 부여되어 있던 저 생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과일의 껍질과 나뭇잎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나 내부에 품고 있는..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4
릴케 표범 — 파리의 식물원에서 그의 시선은 지나가는 쇠창살들로 너무나 지쳐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다. 그 시선에는 수천의 창살들만이 있고 그 창살들 뒤에는 세계가 없는 듯. 유연하고 힘찬 발걸음의 포근한 행로는 아주 작은 원을 이루어 맴을 도는데, 거대한 의지가 그 속에 마비되..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4
릴케 가을날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그것들에게 또한 보다 따뜻한 이틀을 주시옵소서. 그것들을 완성으로 몰아가시어 강한 포도주에 마지막 감미를 넣으시..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3
호프만시탈 여행의 노래 물은 굽이쳐 흘러 우리를 삼킬 듯하고 바위는 굴러 우리는 쓰러질 듯한데 날새 또한 빠르고 세차게 날개치며 날아와 우리를 채어 갈 듯하다. 하지만 저 아래쪽에 밭이 끝없이―끝없이 펼쳐져 있고 연륜을 알 수 없는 호수에는 과일이 무수하게 그림자 드리우고 있다. 대리석 .. 세계의 명시/독일 201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