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
— 파리의 식물원에서
그의 시선은 지나가는 쇠창살들로
너무나 지쳐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다.
그 시선에는 수천의 창살들만이 있고
그 창살들 뒤에는 세계가 없는 듯.
유연하고 힘찬 발걸음의 포근한 행로는
아주 작은 원을 이루어 맴을 도는데,
거대한 의지가 그 속에 마비되어 있는
중심을 맴도는 춤과도 같다.
다만 가끔 동공의 포장이 소리없이 걷혀지며
어떤 영상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사지를 긴장된 고요가 훑어간다,
그리고 심장 속에서 존재하기를 끝낸다.
* 이 시는 첫머리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파리 식물원에 있는 표범을 하나의 사물로 충분히 관찰한 결과 만들어진 작품이다.
1903년에 완성된 이 시는 1907년에 간행된 시집 <신시집>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