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높은바위 2023. 7. 1. 05:33

 

타락한 처녀

 

"아, 밀리어,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시내에서 널 만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한데 이 멋진 옷과, 이런 화려함이 어디서 온 거니?" -

"아, 넌 몰랐니, 내가 타락한 것을?" 그녀는 말했네.

 

- "넌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신발도 양말도 없었잖아,

감자 캐고, 고들빼기 뽑는 데 지쳐 우릴 떠날 때는,

지금은 예쁜 팔찌에 고운 깃털을 세 개나 꽂았네!" -

"그래, 우린 이렇게 입어, 타락했을 땐," 그녀는 말했네.

 

- "시골 고향에 있을 땐, '니', '너', 그리고

'이거', '저거', '딴 거'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네가 말하는 것이 상류 사회 말투야!" -

"타락하면 제법 세련되어져," 그녀는 말했네.

 

- "그때는 네 손이 거칠었어, 얼굴은 윤기 없이 파랬고,

한데 이제는 네 고운 뺨이 너무 매력적이네,

작은 장갑은 네가 마치 귀부인인 것처럼 잘 어울리네!" -

"타락하면 고된 일은 전혀 하지 않아," 그녀는 말했네.

 

- "넌 고향에서의 삶이 지긋지긋한 악몽 같다고 했었지,

그리고 한숨짓고, 불평하곤 했었어, 한데 지금은

넌 침울하거나 우울한 것을 모르는 것 같아!" -

"정말이야. 타락하면 아주 쾌활해져," 그녀는 말했네.

 

- "나도 깃털을 꽂고, 화려한 가운을 걸치고,

우아한 얼굴로 거리를 자랑스럽게 걸어봤으면!" -

"친구여 - 너처럼 순전한 시골 처녀는 그런 것을

도 꾸지 마. 넌 타락하지 않았잖아," 그녀는 말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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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여성의 혼전 순결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반면에 남성에 대해서는 관대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 관습과 도덕률에 대한 풍자 시이다.

 

시골에서 함께 자란 두 처녀가 한동안 떨어져 있다가 우연히 마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처녀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창녀가 되었거나, 돈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처녀는 고향에 남아, 집안 농사일을 돕고 예전처럼 살고 있다.

 

고향의 처녀는 도시로 간 처녀가 예쁘고 우아한 귀부인처럼 변한 것을 부러운 듯이 말하고 있다.

 

친구는 자신의 예쁜 옷, 세련된 말투, 우아한 모습 등은, 자신이 '타락했기' (be ruined)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고 대답한다.

고향 처녀는 자신도 깃털을 꽂고, 화려한 가운을 걸치고, 우아한 얼굴로 '거리를 자랑스럽게 걷고 싶다' (strut about Town)라고 하지만,

 

도시로 간 처녀는, 그녀처럼 '순전한 시골 처녀' (a raw country girl)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녀가 '타락하지 않았기' (you ain't ruined)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시는 가벼운 대화체로 쓰였으며, 순진한 척하면서 물어보는 시골 처녀와 거기에 대답하는 '타락한 처녀' (ruined maid)의 대화 내용이 아이러니하며, 심지어 희극적으로까지 들린다.

 

경멸과 부러움이 섞인 시골 처녀의 마음과, 자기 신세에 대한 한탄과 함께 한편으로는 옛날과 달라진 자신의 우아함을 자랑하고 싶은 타락한 처녀의 마음을 간결하고 가벼운 필치로 대비시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 도덕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당시 여성은 정숙하고 순결할 것을 요구받았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이 시에서 도시로 간 처녀는 자신이 '타락하였다'(ruined)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사회적 경멸의 대상으로 비참한 신세를 한탄한다기보다는, 가난하고 촌스러운 시골 생활을 벗어나, 윤택하고 우아한 삶의 기회를 잡은 것처럼 자랑하는 듯 들린다.

 

'타락한' 것이 마치 일종의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시골 처녀도 속마음은 타락한 친구를 경멸하는지 모르지만, 친구의 화려한 옷과 우아한 모습에 대한 부러워하는 마음을 친구에게 말하고 있다.

 

토머스 하디는 당시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조롱하듯이, 도시로 간 처녀의 입을 빌려, '촌뜨기 시골처녀' (raw country girl)는 타락할 자격조차 없는 듯이 말하고 있다.

 

"친구여 - 너처럼 순전한 시골 처녀는 그런 것을

꿈도 꾸지 마. 넌 타락하지 않았잖아,"

("My dear - a raw country girl, such as you be,

Cannot quite expect that. You ain't ruined,")라고 말하고 있다.

 

1행의 '밀리어' ('Melia)는 '아멜리아' (Amelia)를 말한다.

3행의 'prosperi-ty' 에 하이픈을 넣은 것은 각운을 맞추기 위함이다.

동시에 뒷부분에 강세를 주어 '조롱'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하이픈이 11행의 'compa-ny', 15행의 'la-dy', 19행의 'melancho-ly' 에서도 쓰였다.

6행의 'docks' 는 식물로 많은 변종이 있다.

우리말로 '수영 또는 괴승애'라고 하는 종류가 있으나 전혀 생소한 이름이다.

유사한 계통에 속하는 '고들빼기'로 번역하였다. (블로거 "차일피일"님의 해설과 번역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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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년 6월 2일 ~ 1928년 1월 11일)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조지 엘리엇의 전통을 잇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실주의 작가였던 하디는 자신의 소설과 시 모두에 있어 낭만주의, 특히 윌리엄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았다.

하디는 빅토리아 시대 사회 전반에 대해, 특히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 웨스트 잉글랜드에서 볼 수 있었던 영국의 농촌 사람들이 몰락하는 상황을 비평했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스틴스퍼드(Stinsford)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62년부터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한때 미술 평론가가 되려 했었던 하디는 시 창작에 뜻을 두어 몇 작품을 썼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대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하디는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애버딘 대학교, 브리스틀 대학교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25년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을 접견하던 하디의 저택, 맥스게이트(Max Gate)에 왕세자가 방문하기도 했었다.

 

1927년 12월 뇌졸증에 시달렸으며, 1928년 1월 11일 9시 직후 맥스 게이트에서 사망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아내 플로렌스 더그데일(Florence Dugdale)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밤 9시경 사망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심장은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사별한 첫 아내 에마 기퍼드(Emma Gifford)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