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만약 어떤 양심 깊은 신이 하늘에서 내게
소리쳐 웃으며 "너 괴로운 중생아,
네 슬픔이 내 환희임을,
네 사랑의 상실이 내 증오의 독임을 알라"라고 말한다면
그러면 나 그것을 견디리라, 이 악물고, 그리고 죽으리라
풀 길 없는 분에 강철같이 굳어진 마음으로
나보다 ‘더 강한 누군가’가 뜻하여
내가 흘릴 눈물을 주었음에 반쯤은 위로받겠지.
허나 그렇지 않아, 왜 기쁨이 학살되어 눕고,
씨 뿌린 것 중 최상의 희망은 꽃피지 않는 것인가?
- 우둔한 기화(奇禍)가 태양과 비를 가로막고,
애꾸눈의 심판자들이 내 행로의 주위에
고통만큼 행복도 뿌렸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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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년 6월 2일 ~ 1928년 1월 11일)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조지 엘리엇의 전통을 잇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실주의 작가였던 하디는 자신의 소설과 시 모두에 있어 낭만주의, 특히 윌리엄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았다.
하디는 빅토리아 시대 사회 전반에 대해, 특히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 웨스트 잉글랜드에서 볼 수 있었던 영국의 농촌 사람들이 몰락하는 상황을 비평했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스틴스퍼드(Stinsford)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62년부터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한때 미술 평론가가 되려 했었던 하디는 시 창작에 뜻을 두어 몇 작품을 썼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대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하디는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애버딘 대학교, 브리스틀 대학교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25년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을 접견하던 하디의 저택, 맥스게이트(Max Gate)에 왕세자가 방문하기도 했었다.
1927년 12월 뇌졸증에 시달렸으며, 1928년 1월 11일 9시 직후 맥스 게이트에서 사망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아내 플로렌스 더그데일(Florence Dugdale)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밤 9시경 사망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심장은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사별한 첫 아내 에마 기퍼드(Emma Gifford)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