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84. 駱 駝

높은바위 2005. 7. 18. 05:50
 

84. 駱    駝

 

                   이 한 직(1921-1979)

 

  눈을 감으면

 

  어린 때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차리를 드시고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생각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때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윈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덜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1939. 문장

 

  * 이 시는 시적 자아가 동물원에서 낙타를 바라보며, 그 정경을 비유해서 지난 날의 늙으신 은사님과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는 노래이다. 시적 자아는 나타를 바라보며 옛 은사님을 낙타에 비유해 본다. 낙타처럼 늙으신 은사님께서 항상 과거를 추억하시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3연에서 전환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거꾸로 낙타를 옛 은사님의 늙은 모습에 비유해 보고, 그 낙타와 자기 자신을 암시적으로 비유한다. 그리하여 자신도 역시 옛 은사님처럼 과거의 동심을 회고하고 있다. 주지적인 기법과 차분한 어조로 해서 이 작품은 회고적이면서도 섣불리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