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83. 榮 山 江

높은바위 2005. 7. 18. 05:49
 

83. 榮 山 江

 

                  여 상 현

 

  진달래 뿌리를 스쳐

  가난한 마슬의 土墻을 돌아

  열두 골 살살이 모여든

  영산강 오백리 서러운 가람아


  먼 天心처럼 푸르고

  어질디어진 청춘의 마음인 듯

  푸른 바다로 푸른 바다로 가는 길이기에

  바맍없이 흘러가며

  하냥 여울져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킴이여


  봉건의 티끌 처마 밑마다 쌓여 있고

  제국주의 외적의 탯줄을 붙들어

  지극히 영특한 ‘뿌르’의 웅거지

  여기 전라도 부호가 사시고

  여기 또 전라도 소작인, 선비의 지식, 상놈

  사철 검정 무명치마의 가시내도 무수히 산다


  소리 잘한다는 전라도 사람

  北間島며 大阪이며 지향없이 따나갔던 이민들

  소리도 없이 흐느꼈던 눈물에 섞여

  굽이굽이 영산강은 흘러가는 것이다


  한발과 홍수의 天災를 뉘 원망하랴

  東拓의 손아귀를 뉘 막어내랴

  왜병은 얕은 예측 상륙상전은 더구나 무서운 전율의 백일몽이었던가

  돈이요 논이요 중추원 참의라

  쇠잔한 목숨들은

  사뭇 궁하면 병사계 면서기 성님이라도 있어야 했다


  기름진 국토, 늘어가는 헐벗은 계급이 있어

  산에 올라 사슴도 될 수 없고

  때론 풀 뜯는 송아지 뛰는 물고기도 부러운

  인생의 크나큰 설움에

  바다로 푸른 바다로 모두가 해방을 찾었다


  오 얼마나 목메어 찾던 해방이었던가

  바둑돌과 절벽 밑을

  크고 작은 들판과 얼음짱 밑을 감돌아

  영상강 줄기찬 물결을 모르랴마는

  바다는 아직도 저 먼 곳에 잇음인가

  진정 눈앞에 해방이 없다


  가을 햇볕에 항쟁의 피도 엉키었고

  왜적과 더불어 호화롭던 놈이

  또한 호화로운 외출이 잦어도 

  담양 죽세공, 화순 탄광부, 나주 소반공

  도둑이 버리고 간 옛땅만 바라볼 뿐인 무수한 농민들


  봄이 오면 제비 날으고

  풀뿌리 캐서 연명할 서름

  열두 골 줄기줄기 모여든

  예나 다름없는 영산강 오백리 서러운 가람이여

 

                      1947. 신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