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원사(判院事) 김효성(金孝誠)은 여색을 좋아하여 한 달이면 스무날은 외방에서 자고 왔다.
남편이 이 지경이니 부인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므로 하루는 부인이 꾀를 내어 베[布] 한 필에 회색 물감을 들여서 일부러 남편의 눈에 띄기 쉬운 곳에 걸어 두었다.
하루는 남편이 방에 들어와 이것을 보고 부인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디 쓸 것이오? 중이나 입을 색깔이지 여염집엔 이런 색깔을 입는 사람이 없을 터인데."
이 말은 꼭 부인이 노리고 있었던 말이었다.
부인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영감께서 너무나 방종한 생활을 하시고 첩을 원수같이 보시니 첩은 이제 머리 깎고 중이나 될까 하고 이 베를 물들여놓은 것입니다."
부인은 이렇게 대답하고 남편의 눈치를 살피니, 그는 웃으며 말하기를
"그거 참 좋은 일이오. 내가 평생에 여색을 좋아해서 계집이라면 기생으로부터 무당, 백정, 하인 할 것 없이 얼굴만 반반하면 가까이 아니해 본 여자가 없지만, 한이 되는 것이 지금껏 중만은 가까이해 본 일이 없는데, 부인이 중이 된다니 그것은 나의 평생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오, 거 참 잘 생각한 일이오."라 하였다.
* 형제, 친척보다 더 사랑하고 귀여워하지만 이내 여색은 나를 배척하고 내 적이 된다. - 고려 문신 이규보
* 한량이 죽어도 기생집 울타리 밑에서 죽는다. -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