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 572

라디오

전파를 이용하여 수신기를 가진 청취자에게 뉴스와 오락 및 교양 프로그램 등을 방송하는 통신 기기. 심야에 라디오는 연인의 입술처럼 달게 속삭인다. 참 말 거 짓 말...... 참말 거짓말......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하얗게 녹는 따스한 시간. 내 귀는 밀실(密室)로 가는 통로처럼 가늘게 열려 있다. (이수익, '라디오', "단순한 기쁨", p. 14)

자기 자신. 흔히 '나'는 자아 발견에 따르는 자기부정이나 자기혐오에 대한 시적 대상이 된다. 시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할 때 인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존재의 자기규정이 어려운 만큼 주로 구름, 바람, 새, 나무, 이슬, 바위, 거울 등의 형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 자화상.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님의 침묵", p. 28) 광막한 우주 안에 좁쌀알보다, 작게 떠 있는 지구보다도 억조 광년의 별빛을 넘은 허막(虛漠)의 바다에 충만해 있는 에테르보다도 그 충만이 주는 구유(具有)보다도 그 반대의 허무(虛無)보다도 미지(未知)의 죽..

아가웨

능금나무과에 딸린 갈잎 작은 큰 키나무. 5월쯤 매화 비슷한 흰 꽃이 핀다. 가을에 작고 둥글며 빨간 열매가 열린다. → 아가위나무(산사나무) 붉은 아가웨 열매를 삼키면서 남조선(南朝鮮)으로 가자 (설정식, '붉은 아가웨 열매를', "제신의 분노", p. 58) 나는 지금 백재령 고개에 앉아 있다 돌더미 위에 늙은 아가위 그 가지에 귀신 발이 흐느적이는 국수당 가을 하늘이 바다인 양 깊푸르다 숲 속에 벌레가 울고 (김도성, '세 소년', "고란초"' p. 84)

자(針尺)

우리나라 재래의 길이를 재는 하나치의 한 가지. 각각의 사물은 각자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가치 척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자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가벼운 무게가 하늘을 생각하게 하는 자의 우아(優雅)는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재어볼 수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 삶에 지친 자(者)여 자를 보라 너의 무게를 알 것이다 (김수영, '자(針尺)', "김수영시전집", p. 100) 새는 날아다니는 자요 나무는 서 있는 자이며 물고기는 헤엄치는 자이다 세상 만물 중에 실로 자 아닌 게 어디 있으랴 벌레는 기어 다니는 자요 짐승들은 털 난 자이며 물은 흐르는 자이다 스스로 잴 줄을 모르니 더없는 자이다 (모두들 인공人工을 자로 쓰며 깜냥에 잰다는 것이다) 자연만이 자이다 사람이여, 그대가 만일 자연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