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 577

자기 자신. 흔히 '나'는 자아 발견에 따르는 자기부정이나 자기혐오에 대한 시적 대상이 된다. 시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할 때 인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존재의 자기규정이 어려운 만큼 주로 구름, 바람, 새, 나무, 이슬, 바위, 거울 등의 형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 자화상.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님의 침묵", p. 28) 광막한 우주 안에 좁쌀알보다, 작게 떠 있는 지구보다도 억조 광년의 별빛을 넘은 허막(虛漠)의 바다에 충만해 있는 에테르보다도 그 충만이 주는 구유(具有)보다도 그 반대의 허무(虛無)보다도 미지(未知)의 죽..

아가웨

능금나무과에 딸린 갈잎 작은 큰 키나무. 5월쯤 매화 비슷한 흰 꽃이 핀다. 가을에 작고 둥글며 빨간 열매가 열린다. → 아가위나무(산사나무) 붉은 아가웨 열매를 삼키면서 남조선(南朝鮮)으로 가자 (설정식, '붉은 아가웨 열매를', "제신의 분노", p. 58) 나는 지금 백재령 고개에 앉아 있다 돌더미 위에 늙은 아가위 그 가지에 귀신 발이 흐느적이는 국수당 가을 하늘이 바다인 양 깊푸르다 숲 속에 벌레가 울고 (김도성, '세 소년', "고란초"' p. 84)

자(針尺)

우리나라 재래의 길이를 재는 하나치의 한 가지. 각각의 사물은 각자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가치 척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자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가벼운 무게가 하늘을 생각하게 하는 자의 우아(優雅)는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재어볼 수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 삶에 지친 자(者)여 자를 보라 너의 무게를 알 것이다 (김수영, '자(針尺)', "김수영시전집", p. 100) 새는 날아다니는 자요 나무는 서 있는 자이며 물고기는 헤엄치는 자이다 세상 만물 중에 실로 자 아닌 게 어디 있으랴 벌레는 기어 다니는 자요 짐승들은 털 난 자이며 물은 흐르는 자이다 스스로 잴 줄을 모르니 더없는 자이다 (모두들 인공人工을 자로 쓰며 깜냥에 잰다는 것이다) 자연만이 자이다 사람이여, 그대가 만일 자연이거든..

가가

'가게'의 방언. 상점 또는 집들. 거지와 숙녀(淑女)가 가끔 숨박꼭질 하는 곳 생선 가가같이 비린내가 풍긴다 (김동명, '서울역(驛)', "목격자", p. 73) 서로 다투고 서로 속이던 가가들도 문 걷어닫고 (조기천, '제6장', "백두산", p. 98) 고르지 못한 팔다리로 첨하 나즌 가가ㅅ집을 젓먹이듯 헤가리든, 나의 거리여. (주요한, '옛날의 거리', "아름다운 새벽", p. 54)

한글 그리고 국어와 시어(詩語)

우리의 국어는 오랫동안 민족의 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말과, 그 말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글이 서로 분리되어 사용되어 왔다.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 및 조선조 초기까지 말은 그대로인 채 글은 한자 및 이두를 사용해 옴으로써 언문불일치를 보여온 것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로 점점 언문으로 인식되어 사용됨으로써 언문일치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국어가 말살될 위기를 겪었고, 다행히도 선각적인 국어학자와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노력에 의해 생활어의 차원으로, 다시 예술어의 차원으로 살아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한문과 외래어, 신종어들의 파도에 휩쓸려 국어의 혼과 본질이 혹시나 퇴색되어 가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다. 이에 국어의 역사, 생활사 그리고 정신사 및 예술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