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ㅈ

자(針尺)

높은바위 2023. 3. 21. 07:47

 

우리나라 재래의 길이를 재는 하나치의 한 가지.

각각의 사물은 각자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가치 척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자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가벼운 무게가 하늘을

생각하게 하는

자의 우아(優雅)는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재어볼 수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

 

삶에 지친 자(者)여

자를 보라

너의 무게를 알 것이다 (김수영, '자(針尺)', "김수영시전집", p. 100)

 

새는 날아다니는 자요

나무는 서 있는 자이며

물고기는 헤엄치는 자이다

세상 만물 중에 실로

자 아닌 게 어디 있으랴

벌레는 기어 다니는 자요

짐승들은 털 난 자이며

물은 흐르는 자이다

스스로 잴 줄을 모르니

더없는 자이다

(모두들 인공人工을 자로 쓰며

깜냥에 잰다는 것이다)

자연만이 자이다

사람이여, 그대가 만일 자연이거든

사람의 일을 재라 (정현종, '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p.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