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포르투갈: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높은바위 2023. 2. 21. 07:51

 

 기차에서 내리며

 

나는 기차에서 내리며,

동행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는 열여덟 시간 동안 함께 있었지...

기분 좋은 대화

여행속에 피어나는 우애.

나는 기차를 떠나는 것이. 놔두고 가는 것이 슬펐어.

영영 이름도 모를 우연의 친구를.

내 두 눈에서. 느껴졌네. 눈물이 글썽이는 것이...

모든 이별은 하나의 죽음이라네...

그래. 모든 이별은 죽음이지.

삶이라 부르는 이 기차 속에서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우연이겠지.

그리고 마침내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우린 모두 서운해 한다.

 

인간적인 것은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인다네. 왜냐하면

나도 인간이기에.

내 마음을 움직인다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건

사상이나 강령에 대한 친밀감이 아니라

진정한 인류와의 넓은 우대감이기에.

 

슬퍼하며 집을 나간 하녀가

향수 때문에 운다

그녀를 그다지 잘 대해 주지도 않았던 집을 그리워하며...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선 죽음이요 이 세계의 슬픔이다.

이 모든 것들이. 죽기에. 내 마음 속에 살아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이 온 우주보다 조금 더 크다.

 

 * * * * * * * * * * * * * *  

 

*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1888년 6월 13일 ~ 1935년 11월 30일)1888년 6월 13일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었다.

어머니가 두번째로 결혼하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남아공의 더반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자연스레 페소아는 영어와 영문학에 접한다.

이것이 영향을 주어 이후 너새니얼 호손, 월트 휘트먼, 애드거 앨런 포 등 유명한 작가의 영어로 되어 있는 작품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했으며, 본인이 직접 영어로 된 시집을 쓰기도 했다.

한편 1905년, 학업을 위해 리스본에 돌아오지만 개인적인 실패와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문학적 영감을 얻었고 포르투갈어로 창작을 시작한다.

1912년, 문학잡지 '아기아(A Águia)'에 기고문을 투고하며 작가가 아닌 비평가로서 문학계에 데뷔한다.


1915년에는 포르투갈의 모더니즘 운동인 '오르페우 운동'의 중심격으로 활동한다.

그는 '오르페우' 잡지를 출간하고 이명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전 그의 책들은 거의 출간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자신의 시집을 츨판할 출판업자를 찾았지만 빈번이 거절당했으며, 리스본에서 친구와 함께 출판업체를 세워 자신의 시집 두편을 출판하나 출판업체가 일종의 스캔들로 인해 망한다.


페소아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비판했다.

또한 1933년에 세워진 살라자르 정권에 회의를 느껴 살라자르의 독재를 비판하기도 했다.

1935년 11월 30일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포르투갈의 100 에스쿠도 지폐의 모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