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이탈리아

잠바티스타 마리노(Giambattista Marino)

높은바위 2024. 4. 18. 06:31

 

아도네(Adone)

 

칸토 프리모


67. 그을음이 자욱한 다른 대장간에서는 영원한 신들의 부모인
절름발이 벌컨이 연기와 땀으로 물든 다양한 도구를

정제하고 황금 투창, 불굴의 사랑의 신성한 성질을
만들기 위해
들어옵니다.
그것은 효력이 있고, 침투력이 있으며, 강
해서 불멸의 가슴이 상처를 입어 죽을 수 있다.

68. 눈먼 궁수의 문을 비운 후, 그는 신성한 예술가의 거대한 철제 공장을 열었는데,
일부는 이미 예의 바른 작품들이었고,
일부는 여전히 불완전했으며,
혼란스럽고 뒤섞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천상의 전사의 번쩍이고 투명한 무기가
멋진 광경을 연출합니다.
여기에 올림푸스와 오사의 거대한 벼락의 불꽃, 날개 달린 붉은
번개가 있습니다.

69. 팔라스의 방패와 화살,
세레스의 지팡이와 비덴트,
디아나의 날카로운 꼬챙이, 헤라클레스의 거대한 철퇴,

토성의 낫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고,
아폴론의 활이 사나운 뱀을 죽였고,
해왕성의 사다리꼴, 명왕성의
쇠스랑이 두 점의 강철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70. 그는 명성이 날아가는 소리를 내는 나팔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비난하고 칭찬합니다.
족쇄가 있는데, 그 족쇄 중에는 에올루스가 미친바람을 가두고, 폭풍우를 가두어 둔다.
사슬이 있으며, 때때로 Bellona는
Fury와 Discord 매듭을 묶습니다.
그리고 야누스가 평화나 전쟁을 위해
그의 위대한 사원을 잠그고 여는 열쇠가 있습니다.

 

-----------------

 


103. 인어가 그대 안에 누워 있고, 그대를 위해
미덕이 일어나고 영광이 피어나는 것을 본다.
목성의 왕좌, 그리고 소중한 영웅의
행복한 여관과 행운의 자리.
나의 달콤한 항구여, 나의 가슴에 내 보금자리를 둔 그대의 거민들에게,
나는 영원히 견뎌야 하리라.
백조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선택받은 자,
그리고 내 형제들의 믿음직한 피난처. —

104. 이 애정 어린 칭찬과 함께 내 조국의 강에 대한 사랑
은 찬양을 쏟아붓는데,

왜냐하면 그는 수천 개의 다른 것들 중에서 뚜렷하고 위대한 희미한 광채와
녹색 화환이 볏에 짜여진 감사한 냄새로
피어난 백향목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해왕성이 있는 얼음 동굴에는
계단이 있습니다.

105. 투명한 크리스털 시트가 백발의 레그네이터를 파도로부터
밀어내고,
다이아몬드 베이스가 있는 금과 산호
기둥으로 지탱됩니다.
그리고 말을 탄 테스투디네,
황태자, 뿔 달린 송아지, 수백 명의
다른 작은 신들, 천박한 신들이 바다의 군주권을 그에게
양보한다.

106. "오직 분노 때문에 생각하라." 사랑이 말했다,
"위대하신 아버지여, 그것이 너희에게 온다;
평화의 하느님은 다툼을 사랑하실 수 없고,
사랑의 가슴속에는 증오가 왕 노릇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이
나의 고귀하고 가치 있는 활을 위한 사업을 새롭게 정하였기 때문에,
정중한 호의로 그 일을 쉽고 신속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그대를 돕는다.

 

 * * * * * * * * * * * * * * * * 

 

* 잠바티스타마리노(Giambattista Marino, 1569.10.18∼1625.3.25)는 이탈리아 시인이다.

그는 나폴리에서 출생하여, 알도브란디니 재상을 따라 로마ㆍ라벤나ㆍ토리노 등지를 전주(轉住) 한 후 1615∼1622년에 파리에서 마리아 데 메디치(Medici)와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구상은 데카당스 시대 문학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걸작 장편시 <아도네(Adone)>(1623)가 있고, 그의 시풍(詩風)은 ‘마리니스모’라고 한다.

 

17세기 이탈리아 시문학을 지배했던 마리니즘 유파의 창시자이다.

그가 쓴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인정을 받았고, 모방자들의 작품을 월등히 능가했다.

모방자들은 그의 복잡한 언어 구사와 정교한 착상, 은유 등을 극단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에 마리니즘이라는 말은 경멸적인 용어가 되고 말았다.

그의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번역되었다.

그 밖에도 종교시 <무고한 자들의 학살>(1632)과 소나타 등을 썼는데, 나폴리에서 그의 파란 많은 생애를 보냈다.

 

부모의 강요로 법학을 공부했으나 개업하기를 거부했다.

1590년부터 자주 금전문제를 일으켜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정을 드나드는 등 방종한 생활을 했는데, 검열을 무시하고 간신히 출판했던 시집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초기 작품의 대부분이 큰 호응을 얻어 필사본으로 읽히다가 그의 만년에 출판되었다.

1596년에 <시링크스>라는 신화적이고 목가적인 주제를 담은 관능적인 전원시 연작을 썼으나, 1620년이 되어서야 출판할 수 있었다.

잠시 나폴리 왕자의 비서로 지내다가 1598년과 1600년 2차례에 걸쳐 불경죄로 체포되었는데, 매번 권력 있는 추종자들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그 뒤 로마로 가서 교황의 조카인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 추기경과 깊은 교분을 맺고, 그와 함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파르마에서 관능적인 내용의 시를 몇 편 출판하려다 검열에 걸려 금지당했으나 초기 시들은 <시>(1602) <하프>(2권. 1608ㆍ1614)라는 제목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

1608~15년에는 토리노에서 사보이 공작의 후원을 받았으나, 경쟁시인 가스파레 무르톨라를 비난하는 내용의 풍자시 <무르톨레이데>(1619)를 써서 공작의 분노를 샀다.

무르톨라는 이 일과 다른 이유들을 내세워 그를 투옥시켰다.

후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마리노는 1615년 토리노를 떠나, 파리로 가서 1623년까지 마리 드 메디시스와 루이 13세의 후원을 받으며 지냈다.

 

파리를 떠나기 전에 20년이나 걸려서 만든 가장 뛰어난 작품인 <아도네(Adone)>(1623. 1922년 R. 발사모 크리벨리가 결정판 <아도니스> 선집으로 편집)를 출판했다.

이것은 4만 5,000행으로 된 장편시로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사랑 이야기에 많은 여담을 덧붙여 만든 작품인데, 마리노 문체의 장단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다.

가장 훌륭한 부분은 완벽한 문체로 쓴 화려한 대목이며, 가장 좋지 않은 부분은 지나친 기상(奇想)과 은유, 말장난과 과장을 해서 쓴 대목이다.

1623년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다시 검열에 걸려 곤란을 겪게 되었으나 죽을 때까지 나폴리에서 지냈다.

그밖에 기억할 만한 작품으로는 미술품을 시적으로 재창조하려 한 <화랑>(1620) <무고한 자들의 학살>(1632)이 있다.

그의 편지들은 1627년에 <서한집>으로 출판되었다.

 

【작품】<하프(La lira)>(1602) <무르톨레이데>(1619) <풍적(風笛)(Sampogna)>(1620) <화랑>(1620) <아도네(Adone)>(1623) <무고한 자들의 학살>(1632)

【시집】<시>(1602) <하프>(2권. 1608ㆍ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