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내가 사랑하는 플라타너스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잎이여,
운명은 너희들에게 빛나네
천둥과 번개와 폭풍우가
너희들의 평안을 결코 어지럽히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남풍도 너희들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나무 그늘에서 이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울 만큼 유쾌한 일은 없었네
* * * * * * * * * * * * * *
* 니콜로 미나토 백작(1627년 베르가모 출생 ~ 1698년 2월 28일 비엔나 사망)은 이탈리아의 시인, 극작가, 임프레사리오(현대의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였다.
그의 경력은 1669년까지 베니스에서 보낸 해와 죽을 때까지 비엔나에서 보낸 세월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미나토는 오페라 극작가로서의 총 200편이 넘는 방대한 대본을 썼다.
그는 1650년 Francesco Cavalli를 위해 쓰인 Orimonte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그는 주로 변호사로 일했으며, 11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첫 번째 직업을 포기하고, 대본과 연극 관리의 구성으로 완전히 전환했다.(그의 동시대 인 Giovanni Faustini도 마찬가지였다.
Minato는 또한 Busenello와 함께 고전과 현대 법학을 연구하는 데 전념한 그룹인 Accademia degli Imperfetti를 비롯한 여러 문학 아카데미의 회원이었다.
그는 베니스를 위해 1665개의 대본을 썼는데, 대부분은 카발리를 위한 대본이었지만, 일부는 안토니오 사르토리오가 처음 설정했다.
1667 년에 그는 Teatro San Salvador 극장의 경영에서 저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작곡가 Giovanni Legrenzi와 협력하여 1669년 오페라 Zenobia e Radamisto를 수정했다.
이후 그는 베니스를 떠나, 비엔나에서 주걱턱과 근친혼으로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家) 황제 레오폴드 1세의 궁정 시인이 되었다.
비엔나에서 그는 오페라 세리아와 페스타 테아트랄레와 같은 다양한 장르에서 170편 이상의 대본을 썼는데, 연간 평균 5편 정도였다.
세속 작품의 작가로서의 의무 외에도 미나토는 종종 오라토리오로 묘사되는 신성한 극본의 다작 제작자였다.
그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주어진 공연을 위해 이러한 극본을 주로 제공했다.
예를 들어 왕실의 생일, 또는 사순절 축하 행사 또는 법원 결혼식등, 미나토는 인기 있는 대본가였으며 그의 사후 그의 작품은 요한 아돌프 하세, 헨델, 조반니 보논치니, 텔레만과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자주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