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찬가
사탄은 불전차를 타고
자유자재로 여기저기를 오가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네.
아, 사탄아
이 반역자여,
아, 이지자여
이것이 복수의 힘
내 당신께 경의를 보내네.
우리는 당신께 기도를 올리며
신성한 영광을 비네.
당신은 여호와를 정복하고
전도사를 뒤로 떼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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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교황령의 로마와 오스트리아 및 프랑스의 지배 하에 있던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부분적 통일을 이뤘던 이탈리아 왕국을 찬양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사탄'이란 종교적 관점에서 '악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정치 조직을 뜻한다.
당시 교황령이었던 '로마'로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려 했던 '가리발디' 장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다.
'사탄찬가'는 카르두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며, 또한 평단에서 논란 및 반발을 일으켰던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는 높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카르두치가 이탈리아의 민족 시인으로서 그 명성을 떨치게 된 작품이기도 하며, 19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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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에 알레산드로 주세페 카르두치(Giosuè Alessandro Giuseppe Carducci, 1835년 7월 27일 ~ 1907년 2월 16일)는 이탈리아의 시인·고전문학자이다.
중부 이탈리아의 발디카스텔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리스·라틴을 위시한 고전작품을 가까이하였고, 근대의 작가로서는 알레산드로 만초니와 조반니 베르셰의 작품을 애독하였다.
피렌체의 로마 가톨릭교회 계열 중학교를 거쳐 피사 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소위 수재 코스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그러나 1858년에 형(兄) 단테가 자살하고, 곧이어 부친도 사망하자, 출판 편집에 종사하며 일가를 부양했다.
1860년에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볼로냐 대학 국문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정치 비밀 결사원인 부친의 혈통을 이어받아서인지, 국가 통일시대에는 신 정부를 통렬히 비난하는 시 <청춘 시절>과 <경중 시집(輕重詩集)>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 후 점차 민족주의자의 성격을 띠어, 오히려 지도자 계급의 어용 시인·문학자로 전락하였다.
1890년에는 상원의원에 임명되고, 190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