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러시아 26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투셴코(Евг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втуше́нко)

별의 역사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람의 운명은 별의 역사와도 같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하고 비범하여 서로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가 눈에 띄지 않게 살았다면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친숙해졌다면 바로 이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하여 그는 사람들 가운데 흥미롭다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 이 세계 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이 세계 안의 가장 무서운 순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사람이 죽어 가면 그와 함께 그의 첫눈이, 첫 키스가, 첫 번째 싸움이 죽어 가는 것 … 이 모든 것을 그는 함께 가져간다 그래, 책들이, 다리들이, 자동차들이, 화가의 화폭들이 남을 것이다 그래, 많은 것은 남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여전히 떠나가는 ..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투셴코(Евг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втуше́нко)

바비 야르(Babi Yar) 바비 야르 위에는 아무런 기념비가 없다. 가파른 협곡은 마치 황폐한 묘비 같다. 나는 오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며 두려워한다. 나는 이제 내가 유태인이라고 느낀다. 여기서 나는 고대 이집트를 떠돈다. 그리고 여기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며, 아직도 나는 못자국이 나있다. 나는 내가 드라이푸스라는 느낌이 든다. 부르주아 무리들이 나를 고발하고 재판한다. 나는 철창 속에 있다. 나는 둘러 싸여서 학대받고, 침세례를 받고, 비방받고, 레이스 장식을 한 멋진 여인들이 내 얼굴에 양산을 들이대고 괴성을 지른다. 나는 내가 비엘로스톡의 작은 아이로 느껴진다. 바닥에는 피가 튀어 있다. 선술집의 주모자는 짐승같이 되어간다. 그들에게서 보드카와 양파 냄새가 풍긴다. 나는 ..

오시프 에밀리예비치 만델슈탐(Осип Эмильевич Мандельштам)

침묵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나, 그녀는 음악이요 말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깨뜨릴 수 없는 관계. 바다의 가슴은 조용히 숨을 쉬나 낮은 광인처럼 빛난다. 흐린 하늘색 그릇의 거품이 창백한 라일락 같다. 태어날 때부터 순결한 크리스털 음성처럼, 내 입술이 태초의 침묵을 얻게 해 주오! 아프로디테여, 거품으로 남아 있으라 그리고 말이 음악으로 돌아가게 하라 가슴이여, 마음의 수치를 담아라 삶의 근원에서 합쳐진 채로! * * * * * * * * * * * * * * * * 오시프 에밀리예비치 만델슈탐의 시집 에는 1930년대에 쓰인 그의 시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는지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스탈린을 풍자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비밀경찰에 원고를 압수당하고 시들이 전부 불태워졌음에도..

오시프 에밀리예비치 만델슈탐(Осип Эмильевич Мандельштам)

크렘린의 높으신 분 우리는 우리 발 밑의 조국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네 우리의 말은 열 발자국만 떨어져도 들리지 않지만 어쩌다 말을 꺼내게 된다면 크렘린의 높으신 분이 반드시 언급되기 마련이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통통한 손가락은 지방으로 차 있고 아령만큼 무겁고 진중한 그의 말은 언제나 옳다네 바퀴벌레 같은 콧수염은 웃음을 짓고 있고 그의 장화는 반짝거리지 그의 주변은 두꺼운 목의 어중이 떠중이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는 이 반푼이들의 시중을 받는다지 누구는 속삭거리고, 누구는 야옹거리고, 누구는 훌쩍거리고 그 혼자만이 으르렁거리고 이놈 저놈 거린다지 마치 편자마냥 그는 갖가지 법령을 박아대지 누구는 고간에, 누구는 이마에, 누구는 눈썹에, 누구는 눈짝에 그의 처벌은 무엇이든 간에 달콤하기 그지없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