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풀잎 斷章
조 지 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에 깎여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줄기 바람에 조찰히 씨시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오오르는 한떨기 영혼이여.
1952. 『풀잎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