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쉽게 씌어진 시
尹 東 柱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후의 악수.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1.시작(詩作) 배경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좌절과 번민, 무력감을 부끄럽게 느끼면서 끝없는 모색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시인의 사명감을 자각해 가는 성찰의 모습을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2.시상의 전개
*제1,2연-이국의 육첩방에서 시나 적어 볼까
*제3,4연-학비를 받고 강의를 들으러 감
*제5,6,7연-시가 쉽게 씌어짐이 부끄러움
*제8,9,10연-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며 위안의 악수를 함
3.주제:이국에서의 고독과 시인으로서의 천명성 확인
4.제재:시가 쉽게 씌어지는 부끄러움
5.성격:명상적, 고백적
6.詩語의 의미
*육첩방(六疊房):작은 방. 억눌리고 암담한 공간
*천명(天命):하늘이 내린 피할 수 없는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