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9. 芭 蕉

높은바위 2005. 6. 2. 06:10
 

19. 芭    蕉

                  김  동  명



  祖國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연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1936년, 조광



* 파초를 의인화하여 잃어버린 조국에의 향수와 외로운 심경을 그린 작품으로 작품 안의 모든 은유를 연관시켜 전개해 간 방법이 시적 통일성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인 파초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 자신의 괴로움과 손망이 담긴 시적 형상이며, 이 작품의 묘미와 호소력은 그것을 여성으로 의인화하여 ‘수녀, 정열의 여인, 드리운 치맛자락’ 등으로 노래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있다. 특히 파초의 잎사귀를 치맛자락으로 표현하여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라고 말하는 마지막 구절은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그것을 한 순간 시적으로 관조해 보려는 태도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