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59. 보 리 밥

높은바위 2005. 8. 2. 05:53
 

159. 보 리 밥

 

                          조 태 일

 

  건방지고 대창처럼 꼿꼿하던

  푸른 수염도 말끔히 잘리우고

  어리석게도 꺼멓게 익어버린 보리밥아

  무엇이 그렇게도 언짢고 아니꼬와서

  나를 닮은 얼굴을 하고

  끼리끼리 붙어서

  불만의 살갗을 그렇게도 예쁘게 비비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꺾어

  하염없이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너는 너무도 엄숙해서

  농담은 코꿑에서 간지러움으로 피고

  가슴 속엔 더운 북풍이 인다.

  너희들은 쾅쾅 칠 땅은 없고

  바람 끝에나 매달리면 어울릴 땀을

  다 뒤집어쓰고 나더러는

  고추장이나 돼라 하고 나더러는

  아무 데서나 펄럭일 깃발이나 돼라 하고

  탱자나무 울타리 위에

  갈기갈기 찢겨 널리던 바람처럼

  활발하게 살아라 하느냐

  멍청한 보리밥아

  똑똑한 보리밥아

 

               1969.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