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벼
이 성 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1973. 문학과 지성
* 이 시는 벼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 민중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로 유추에 의한 표현 방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즉 벼라는 생명 표상을 통해서 수천년 동안 눈물과 땀, 피가 배어 온 이 땅에서 민족적 삶의 뿌리와 역사의 저력으로서 전개되어 온 민중의 한과 그 공동체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벼는 개체로서의 민중의 삶, 또는 생명 의지로 표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