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가 본 일 없는 곳에서
내가 아직 가 본 일 없는 어느 멋진 곳에서
경험을 초월한 거기서 그대 눈은 침묵을 지킨다.
그대의 귀여운 동작에는 나를 감싸는 것이 있고
그보다도 너무 가까워 내가 손닿지 못함이 있으니
그대의 가냘픈 눈짓도 나를 나른하게 만들고
아무리 손가락처럼 자기를 폐쇄하고 있어도
마치 봄이 교묘히 닿아서 이상하게 이른 장미를 열게 하듯이
한 개 한 개 나를 열게 하는 것이다.
그보다도 그대의 바람이 나를 닫는 것이라면
나뿐 아니라 내 인생도 아름답게 갑자기 닫히리니
마치 꽃가루가 주위에 살며시 내리는
저 눈을 느낄 수 있음과 같이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대의 거센 약함의 힘을 이길 수가 없나니
그 느낌은 아름다운 전원 빛깔로 내 마음을 붙잡고
숨 쉴 때마다 죽음과 영원을 교대로 주며
(그대의 감았다 떴다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나
내 마음의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그대 눈의 소리가 모든 장미보다 깊음을)
그 무엇이나 비조차도 이런 예쁜 손은 아니다.
* 세계 제1차 대전 후 미국에는 중요한 시인 두 명이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이고, 다른 한 명은 에드워드 에슬린 커밍즈(Edward Estlin Commings : 1894-1962) 이다.
커밍즈는 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제1차 대전 후에 헤밍웨이 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그 자유롭고 낙관적인 문화적 분위기를 몸에 익히고 귀국하였다.
그의 초기 시집 <튜울립과 굴뚝>(1923)은 그 결과 생겨난 산물로서, 거기에는 프랑스어의 타이틀과 수법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는 영어의 구문법을 해체하여 의식적으로 외국어처럼 시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커밍즈의 공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시의 내용을 말한다면 커밍즈의 세계는 의외로 단순한 서정시로서, 이 시에서도 연인의 온화한 미력을 전통적인 소네트에서처럼 찬양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