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소식(蘇軾)

높은바위 2015. 8. 17. 09:12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1) 子由의 시에 화답하여 민지에서 옛일을 회상하며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인생 가는 곳 마다 무엇 같은지 아는가?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날아가던 기러기가2) 눈밭을3) 밟는 것과 같으리.

 

泥上偶然留指爪(이상우연유지조)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지만,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기러기 날아가고 눈 녹아버리면 어찌4) 동서를5) 분별하리.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늙은 스님은6) 이미 죽어 사리탑이 새로 서고,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낡은 벽은7) 허물어져 옛 글씨를 볼 수 없네.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기구했던 지난날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路長人困蹇驢嘶(로장인곤건려시)           길은 멀고, 사람은 지치는데, 절룩이는 나귀의8) 긴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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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和) : 화답(和答)하다. 주다.

 

2) 비홍(飛鴻) : 날아다니는 기러기.

 

3) 설니(雪泥) : 눈으로 뒤범벅이 된 진 땅. 설니홍조(雪泥鴻爪, 눈 위의 기러기 발톱 자국. 눈이 녹으면 발자국 흔적이 없어져 버리듯 인생의 자취도 이와 같이 흔적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임).

 

4) 나부(那復) : 어찌 다시.

 

5) 동서(東西) : 동쪽과 서쪽. ‘흔적’의 뜻임.

 

6) 노승(老僧) : 봉한화상(奉閑和尙). 1056년 개봉으로 갈 때 자신의 부자(父子)를 환대하던 봉한화상(奉閑和尙)의 절에 묵었었는데, 지금은 그가 입적하여 그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만 새롭게 서있다.

 

7) 괴벽(壞壁) : 옛날에 글씨를 써두었던 벽이 무너짐. 봉한화상(奉閑和尙)의 절에 묵었을 때, 시를 써 두었던 절의 벽이 시도 뭉개지고 마모되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 있었다.

 

8) 건려(蹇驢) : 절룩이는 당나귀.

 

 

 

* 소식(蘇軾)은 중국 송(宋)나라의 문호(文豪)로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버지는 순(洵), 동생은 철(轍)로, 셋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며, 이들을 삼소(三蘇)라 한다.

 

인종(仁宗) 가우연간(嘉祐年間)의 진사(進士)로 일찍 관계(官界)에 들어가, 철종(哲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앞서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과 의론이 달라 황주(黃州)에 유배되는 등, 정견(政見)과 시문(詩文)으로 하여 수차례 투옥 좌천된 바가 있음에도, 불굴의 기질을 시(詩)와 사(詞)에 잘 표현해 냈으며, 특히 사(詞)는 이별과 규방(閨房)만을 소재로 삼던 옛 투를 버리고, 기백이 넘치는 자유분방한 작풍(作風)을 창시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저서에 ‘동파문집(東坡文集 60권)’, ‘동파시집(東坡詩集 25권)’, ‘동파사(東坡詞 1권)’, ‘구지필기(仇池筆記 2권)’, ‘동파지림(東坡志林 5권)’ 등이 있다.

 

소식 동파는 다 알다시피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일찍이 벼슬길에 올랐지만 당파싸움에 휘말려 풍파를 많이 겪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이른 나이에 당대의 거목 구양수의 눈에 들어 문단에 데뷔하여 주옥같은 글을 무수히 남겼다.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는 소식(蘇軾)이 26세 때에 새로운 임지로 가는 도중, 민지(澠池, 하남성의 땅이름)를 지나면서, 아우 소철[字, 子由]의 시 <민지회구(澠池懷舊)>에 화답하여 지은 시이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눈부시도록 놀랍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봄철 눈 위에 새겨진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이라 눈이 녹으면 그 발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사람도 죽어지면 이렇게 자취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역사상 유명한 인물은 영원히 그 이름과 행적이 전해져 내려오기는 하지만, 그 행적이 그 인물의 모든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로 영원성을 설정하나 그 영원함이란 인생의 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미귀삼척토, 난보백년신. 이귀삼척토, 난보백년분(未歸三尺土, 難保百年身. 已歸三尺土, 難保百年墳. : 석 자 흙 속에 돌아가지 않아 살아 있어도 백년 동안 몸 보전하기 어렵고, 이미 석 자 흙 속에 돌아가 죽었어도 그 무덤이 백년 동안 보전되기 어렵네.)” 했으니, 인생은 ‘살아 백년, 죽어 백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구 살아가서야 되겠는가, 뜻있는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다가 죽는 게 온당하리라.

 

7언절구로서, 압운은 泥, 西, 題, 嘶 자로 평성 ‘제(齊)’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仄平平仄, 平仄平平仄仄平, 平仄仄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으로 이사부동이륙대와 반법, 점법 등 7절(7絶)의 염(簾)에 모두 합치되는 명작(名作)이다.

                                                                        (한시작가작품사전, 국학자료원 참조)

Mark Bracken - Key in the Sun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