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매요신(梅堯臣)

높은바위 2015. 8. 15. 08:05

 

                전가어(田家語)  농부의 말

 

誰道田家樂(수도전가락)                     누가 말했던가, 시골 생활 즐겁다고?

春稅秋未足(춘세추미족)                     봄 세금은 가을이 되어도 다 내지 못 채우는데!

里胥扣我門(이서구아문)                     촌의 아전은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日夕苦煎促(일석고전촉)                     아침 저녁으로 차 달이듯 재촉하니 괴로워라.

 

盛夏流潦多(성하류료다)                     한여름에 홍수가 지더니,

白水高於屋(백수고어옥)                     흰 물결이 집 높이보다 높구나.

水旣害我菽(수기해아숙)                     흙탕물은 이미 우리 채소를 해치고,

蝗又食我粟(황우식아속)                     황충은 또 우리 조를 다 먹어버렸다.

 

前月詔書來(전월조서래)                     지난 달, 임금의 조서가 내려와,

生齒復板錄(생치부판록)                     주민등록을 다시 하란다.

三丁籍一壯(삼정적일장)                     장정 셋에서 하나를 뽑아,

惡使操弓韣(악사조궁독)                     병장에게는 화살집을 만들게 했다.

 

州符今又嚴(주부금우엄)                     고을 수령의 명령은 이제 더욱 엄하니,

老吏持鞭撲(노리지편박)                     늙은 아전은 채찍으로 때렸다.

搜索稚與乂(수색치여예)                     어린 아이와 늙은이도 색출해내고,

唯存跛無目(유존파무목)                     오직 다리병신과 맹인들만 남겨두었다.

 

田閭敢怨嗟(전려감원차)                     농촌에서야 감히 원망이나 할까?

父子各悲哭(부자각비곡)                     아비와 아들은 각각 슬피 울었다.

南畝焉可事(남무언가사)                     들의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買箭賣牛犢(매전매우독)                     소와 송아지 팔아 활을 샀으니 말이오.

 

愁氣變久雨(수기변구우)                     시름의 기운은 장맛비 되고,

鐺缶空無鬻(당부공무죽)                     빈 솥과 항아리에는 죽도 하나 없도다.

盲跛不能耕(맹파불능경)                     맹인과 다리병신은 농사짓지 못하니,

死亡在遲速(사망재지속)                     조만간에 죽을 운명!

 

我聞誠所慙(아문성소참)                     내가 듣건대, 정말로 부끄러운 것은,

徒爾叨君祿(도이도군록)                     헛되이 나라의 녹을 탐낸 것이로다.

却詠歸去來(각영귀거래)                     도리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刈薪向深谷(예신향심곡)                     나무하러 깊은 산골로 향할까?

 

 

 

* 매요신(梅堯臣 : 1002-1060)은 자가 성유(聖兪)이며, 호는 완릉(宛陵)이다.

안후이성[安徽省] 쉬안청[宣城] 출생으로, 선성의 옛 이름을 완릉(宛陵)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를 일컬어 매완릉(梅宛陵)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는 벼슬길이 잘 열리지 않아 50여 세가 되어서야 진사가 되었고, 지방의 관리로 전전하다가 친구 구양 수(歐陽修)의 추천으로 중앙의 관리인 국자감직강(國子監直講:대학교수)이 되었다.

벼슬은 상서도관원외랑(尙書都官員外郞)에 이르렀다.

 

시에 있어서 소순흠(蘇舜欽)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기 때문에, 세칭 '소(蘇)·매(梅)'라고 하였다.

 

그는 송(宋)나라 초기의 시단에 청신하고 평범한 시를 내 놓은 시인이다.

당시 많은 시인들은 만당(晩唐)의 이상은을 추종, 시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에만 주력하다가 정작 내용을 소홀히 한, 이른바 서곤체(西崑體)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순흠(蘇舜欽)·구양 수 등과 같이 성당(盛唐)의 시를 본으로 하여 당시 유행하던 서곤체(西崑體)의 섬교(纖巧)한 폐풍을 일소하고, 달의(達意)를 모토로 하는 송시(宋詩)의 독특한 세계가 열렸다.

그는 새로운 송시(宋詩)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시경』과 『초사』, 이백과 두보 등의 현실주의적인 시가의 전통을 이어받을 것을 강조하여 자연히 서곤파와는 대립적이었고, 시풍의 담백함을 애써 주장하였다.

 

그는 “시란 대상을 정확하게 잡아서 이것을 세밀하게 서술함에 있다”고 말하며, 각고하여 고아(高雅)한 격조와 신선한 발상의 시를 지었다.

세련되고 정밀한 구법(句法)이 특징이며, 두보(杜甫) 이후 최대의 시인이라는 상찬을 받았다.

그의 5행율시(五行律詩)는 왕유(王維)를 닮았다고 하며, 대구(對句)이면서 2구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의미를 구성하는 ‘십자격(十字格)’이라는 특수한 수법을 사용하였다.

 

"작시에는 고금이 없다. 오직 담백하게 짓기가 어렵다.(作詩無古今, 惟造平淡難.)"라고 한 바와 같이, 그의 시풍은 질박하고 담백하다.

당시 농촌의 가난한 생활을 주제로 한 「도자(陶者)」, 「전가어(田家語)」, 「안빈(岸貧)」 등의 시가 있다.

 

그는 정의(情義)가 두텁고 권귀(權貴)에 아첨하지 아니하며 담론과 음주(飮酒)를 즐기고 명사와의 교유가 많았다.

 

시집으로 《원릉집(宛陵集)》 60권이 있고, 《손자(孫子)》 13편의 주(註)와 《당재기(唐載記)》 26권의 저작도 있었다.

산다는 건 - 홍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