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통
너의 눈 때문에, 너의 입술 때문에, 너의 목 때문에
너의 목소리 때문에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너의 심장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의 분노, 광폭한 운명, 한줄기 빛조차 없는 나의 먹구름,
부서지는 나의 달빛을 사랑하듯 너를 사랑했다
너는 아름다웠다. 커다란 눈을 갖고 있었다
커다란 비둘기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높이 나는 힘찬 매처럼······
너는 빛나는 하늘 같은 충만함을 갖고 있었고
세상의 온갖 소문은 감히 네 입에 키스하려 들지 못했다
그러나 달빛이 피를 사랑하듯
혈관 속의 피를 쫓아
노란 열정으로 타오르는 혈관 속을 광폭하게 돌아다니듯
나는 너를 사랑했다
키스를 한다면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리
죽지 않고 노래하리
윤기 흐르는 뼈처럼 죽어 썩어져도 노래하리
투명한 유리가 달빛 아래 반짝이듯 노래하리
육신처럼, 단단한 돌처럼 노래하리.
한마디 말조차 없는 잔인한 너의 이빨들을 노래하리.
잔디가 부드럽게 깔려 있는 대지 위의
너의 고독한 그림자, 너의 쓸쓸한 그림자를 노래하리.
아무도 울지 마오.
눈물조차 살지 못하는, 숨조차 쉬지 못하는
이 얼굴은 쳐다보지 마오.
이 돌, 이 무쇠 같은 불꽃
철탑처럼 울리는 이 몸은 쳐다보지 마오.
너는 부드러운 머릿결, 감미로운 시선,
아름다운 뺨을 갖고 있었다.
희고 짧은 팔을 갖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태, 이마, 겁먹은 듯한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갖고 있었다.
너의 심장은 펄럭이는 깃발이었다.
그러나 너의 피, 너의 삶, 너의 악은 갖고 있질 못하구나.
달에게 죽음을 애원하는 나는 누구인가,
바람에 저항하고, 광폭한 칼날에
상처를 느끼는
번민에 피투성이 된 굳은 석상처럼
이 바람이 너의 대리석 자태를 적시게
내버려 두는 나는 누구인가
천둥 속에서 나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번갯불 같은 나의 팔들
강줄기 같은 이빨들로 되씹힌 나의 다리들 사이에서
돋아난 풀을 적시는 핏빛 빗물소리도 듣지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누가 너를 아는가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오, 그대여 죽을 운명의 아름다움이여
아름다운 사랑이여, 반짝이는 가슴이여!
나는 누구를, 누구를 사랑하는가
꽃처럼 나를 매혹시키는
어떤 그림자, 어떤 육신, 어떤 썩을 뼈들을 사랑하는가
* * * * * * * * * * * *
* 비센테 피오 마르셀리노 시릴로 알레익산드레 이 메를로(Vicente Pío Marcelino Cirilo Aleixandre y Merlo,1898년 4월 26일 ~ 1984년 12월 14일)는 스페인의 시인이다.
철도기관사의 아들로 세비야에서 출생하였으며 마드리드 대학에서 법률과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27세에 《영역》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입술 같은 칼》, 《대지의 정열》 등을 발표하여 독자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1949년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파괴 또는 사랑'으로 스페인 문학상을 수상했고, 자유시의 대가로 평가받았다.
그의 후기 시는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는데, '완성의 노래', '인식에 관한 대화'에서는 죽음·지식·경험 등의 문제를 탐구했다.
시뿐만 아니라 산문 작품인 '회합'을 출판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