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스페인

비센테 알레익산드레(Vicente Pío Marcelino Cirilo Aleixandre y Merlo)

높은바위 2023. 4. 21. 07:17

 

희망을 가지렴

 

그걸 알겠니? 넌 벌써 아는구나

그걸 되풀이하겠니? 넌 또 되풀이하겠지

앉으렴, 더는 보질 말고, 앞으로!

앞을 향해, 일어나렴, 조금만 더, 그것이 삶이란다

그것이 길이란다, 땀으로, 가시로, 먼지로, 고통으로 뒤덮인, 사랑도, 내일도 없는 얼굴……

넌 무얼 갖고 있느냐?

어서, 어서 올라가렴. 얼마 안 남았단다. 아 넌 얼마나 젊으니!

방금 태어난 듯이 얼마나 젊고 천진스럽니!

네 맑고 푸른 두 눈이 이마 위에 늘어진 너의 흰 머리칼 사이로 빛나고 있구나

너의 살아 있는, 참 부드럽고 신비스러운 너의 두 눈이.

오, 주저 말고 오르고 또 오르렴. 넌 무얼 바라니?

네 하얀 창대를 잡고 막으렴. 원하는 네 곁에 있는 팔 하나, 그걸 보렴.

보렴. 느끼지 못하니? 거기, 돌연히 고요해진 침묵의 그림자.

그의 투니카의 빛깔이 그걸 알리는구나. 네 귀에 소리 안 나는 말 한마디.

비록 네가 듣더라도, 음악 없는 말 한마디.

바람처럼 싱그럽게 다가오는 말 한마디. 다 해진 네 옷을 휘날리게 하는

네 이마를 시원하게 하는 말. 네 얼굴을 여위게 하는 말.

눈물 자국을 씻어내는 말.

밤이 내리는 지금 네 흰 머리칼을 다듬고 자르는 말.

그 하얀 팔을 붙잡으렴. 네가 거의 알지 못해 살펴보는 그것.

똑바로 서서 믿지 못할 황혼의 푸른 선을 쳐다보렴.

땅 위에 희망의 선을.

커다란 발걸음으로, 똑바로 가렴, 신념을 갖고, 홀로

서둘러 걷기 시작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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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센테 피오 마르셀리노 시릴로 알레익산드레 이 메를로(Vicente Pío Marcelino Cirilo Aleixandre y Merlo,1898년 4월 26일 ~ 1984년 12월 14일)는 스페인의 시인이다.

철도기관사의 아들로 세비야에서 출생하였으며 마드리드 대학에서 법률과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27세에 《영역》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입술 같은 칼》, 《대지의 정열》 등을 발표하여 독자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1949년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파괴 또는 사랑'으로 스페인 문학상을 수상했고, 자유시의 대가로 평가받았다.

그의 후기 시는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는데, '완성의 노래', '인식에 관한 대화'에서는 죽음·지식·경험 등의 문제를 탐구했다.

시뿐만 아니라 산문 작품인 '회합'을 출판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