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스페인

로르카

높은바위 2015. 9. 23. 08:22

 

       부정(不貞)한 유부녀

 — 리디아 카블레라와 그 꼬마 깜둥이 딸에게 —

 

그래서 나는 여자를 강에 데리고 갔다.

진짜 숫처녀인 줄 믿었었는데

그런데 남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산티아고의 밤에 있은 일이었고

완전히 합의를 본 뒤의 일이었다.

촛불의 꺼지고

쓰르라미들이 등불을 켰다.

마지막 모서리에서

여자의 잠든 유방에 손을 대자

재빨리 나를 위해 열려졌다.

마치 히야신드의 잔가지처럼.

나의 귓가에서

여자의 페티코드의 풀이 울고 있었다.

마치 열 자루의 칼로

한 폭 비단이라도 찢기나 한 것처럼.

은빛 전혀 비쳐들지 않는 숲 속에서

나무들의 모습이 크게 되었다.

그리고 강 건너 저 먼 곳에서는

개들의 지평선이 짖고 있었다.

 

가시떨기를 치우고

등심초와 산사나무 사이를 피하여

여자의 머리털 풀밭 아래서

나는 흙탕 위를 오목하게 만들었다.

나는 넥타이를 풀었다.

여자는 옷을 벗어 던졌다.

나는 권총 달린 허리띠를

여자는 넉 장의 옷을 벗었다.

나르드나무도 조갯살도

이렇듯 부드러운 살결일 수는 없다.

달빛을 받은 수정도

이렇듯 아름답게 빛날 수는 없다.

갑작스레 습격당한 물고기처럼

여자의 허벅지가 내 아래서 도망치고 있었다.

반은 불길이 되어 타오르고

반은 싸늘하게 얼어서.

그날 밤에 나는

재갈도 먹이지 않고 투구도 쓰지 않고

진주조개의 젊은 망아지를 몰아

더할 나위 없는 쾌적한 길을 달리게 하였다.

여자가 내게 무엇이라 하였는지

나는 남자로서 말하고 싶지 않다.

분별의 빛이

나로 하여금 아주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입맞춤과 모래로 더러워진 여자를

강에서 데리고 돌아왔다.

백합화의 칼이

바람에 불려 잘려지고 있었다.

나는 나답게 행동하였다.

늠름한 집시가 그렇게 하듯이

밀짚 색깔 비단 천으로 만든

큼직한 재봉 상자를 보내 주었으나

여자에게 반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아무렴 내가 강으로 데리고 갈 때

버젓이 남편이 있으면서도

숫처녀라고 우긴 여자인데 마음이 끌리겠는가.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 1898-1936)는 스페인의 그라나다시(市) 근교 푸엔테바케로스에서 부유한 농장주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원래는 가르시아 로르카라 해야 옳거나 그대로 로르카라 부르고 있다.

음악에 소질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일찍부터 시와 연극에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라나다대학에서 법학 · 철학을, 마드리드대학에서 문학을 배웠다.

1919년에 마드리드로 가서 1928년까지 보냈다.

자유로운 분위기인 '학생 기숙사'에 들어가 문학가와 예술가들과 친교를 가졌고 시와 연극에 주로 전념하였다.

 

처녀작 <나비의 장난>의 상연(1920)은 실패하였으나, 이듬해의 첫시집 <시의 책>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그 후에 <노래의 책>(1927)과 전통시의 형식을 살리면서 공고라풍(風)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담은 <집시 가집(歌集) : Romancero gitano>(1928)을 내어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집시의 로망세 모음>은 1924년부터 27년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1928년에 간행되어 크나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1929년부터 30년까지 미국에 머물면서 기계 문명 속에서의 비인간화의 공포를 느껴 <뉴욕의 시인>이라는 일련의 시를 썼다.

 

1931년 제2공화국 정부가 성립되자, 대학생 극단 ‘바라카’를 조직, 농촌을 순회 공연하여 연극의 보급과 고전극의 부활에 힘썼다.

또한, 이 무렵부터 극작에 전념하여 불행한 사랑을 그린 <피의 혼례(Bodas de Sangre)>(1933), 석녀(石女)의 비극을 다룬 <예르마(Yerma)>(1934), 폭군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강요당하는 딸들의 비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 La casa de Bernarda Alba>(1936)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모두가 숙명적인 본능의 힘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다.

 

1935년의 <익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에 대한 통곡>은 친구인 투우사의 죽음을 애도한 유명한 시이다.

스페인 시민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신변의 위험을 느껴 고향인 그라나다로 돌아갔다.

그러나 1936년 7월에 스페인 전쟁이 일어난 며칠 뒤에 고향인 그라나다에서 프랑코, 즉 파시스트 쪽에 체포되어 사살되었다.

                                                                                                                    (두산백과 참조)

야나기 나기 - 달빛이 사뿐히 떨어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