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78. 동 천

높은바위 2005. 7. 11. 06:06
 

78. 동   천

                               서 정 주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문학. 139호(1966. 5.)

 

* 이 시는 7.5조의 정형율을 기반으로 한 단 5행의 작품이지만, 일체의 설명적 요소를 배제하고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구사함으로써 강렬한 언어적 긴장과 구성으로 차원 높은 경지를 암시하고 있다.

  이 시의 핵심은 ‘고운 눈썹’과 ‘매서운 새’이다. 이것은 싸늘하면서도 투명한 겨을 하늘(동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눈썹’은 ‘초승달’로 통한다. 이 ‘초승달’이 ‘즈믄 밤의 꿈’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초승달이 무수한 변신 과정을 거쳐 이르는 만월까지의 계단으로 볼 수 있다. ‘초승달’은 시적 자아가 염원하는 동경과 구도의 상징물이다. 따라서 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임(절대적 대상) - 초승달(미완성의 상태) - 만월(완전성, 영원의 세계)’로 전개하고 있다.

  한편, ‘매서운 새’는 영원과 무한을 동경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줄기차게 만월(영원한 세계)에게 접근을 시도하지만, 결국은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정도가 고작인 덧없는 인간이었다. 이상에서 보듯이 이 시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의 정신을 불과 5행의 시에 높이 승화시킨 작품이다.